제가 일하는 곳의 이름이에요.
저는 이 이름이 참 좋아요. < 부엌>이라는 말. 저는 생각했어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어준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여기 부엌에서 읽는 게 맞는다고.
저는 알아요. 제가 날마다 불을 켜 밥을 만드는 부엌에서 따로 떨어져 있던 가족이 식탁에서 비로소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요. 내가 정성을 쏟고 수고를 더하여 지어지는 밥이 아이들의 허기짐을 배부르게 채운다는 것을요. 그래서일까요? 외려 그 생각 때문인지 어느새 다 커버린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여전히 부담스러운걸요. 그전보다 뚝딱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래요. 아이들은 참 재미있어요. 아니, 엉뚱하다고 생각했어요. 점심을 먹으라며 식탁으로 겨우 불러 모으면 저녁에 무얼 먹을지 제게 물어요. 저는 이제 한숨 돌리며 밥 먹으라 하는데, 점심 식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녁 메뉴를 물어보는 게 웬 타령인가 싶어 듣기 싫었어요. 금세 저녁 준비 부담감이 후욱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에요. 너희들은 지금 점심 먹으면서 어제 점심에 무얼 먹었는지 왜 얘기해? 그리고 저녁엔 무얼 먹을 것인지를 왜 벌써 무얼 보니? 엄마는 아직 점심도 안 먹었어! 하며 작게 역정을 내곤 했어요.
참 그거 아세요. 결혼 날짜를 잡고 제일 많이 걱정한 게 무엇인지? 저는 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 내내 친정 엄마가 해주시는 따신 밥을 먹고 출근했어요. 집안일도 안 했던 터라 결혼을 하면 음식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닥치자 그게 한걱정이 된 거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매일매일 밖에 나가서 사 먹거나 라면만 먹을 수는 없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요리 학원에 등록했던 사람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우스워요. 그냥 엄마에게 배우면 되는데 왜 그랬을까 싶은 게.
신혼여행 이후 바로 미국으로 왔으니 따로 신혼살림을 한국에서 장만할 필요는 없었어요. 단출한 가방에 가벼운 이불 한 채와 무거운 요리책 한 권을 넣어왔어요. 엄마가 안 계시는 빈 부엌에 혼자 들어가 처음으로 내 밥을 짓기 위해 불을 켰어요. 태평양 바다를 건너 이국땅에서 사람 설고 물 설은 곳에서 내가 먹을 밥을 짓기 위해 처음으로 쌀을 씻었어요.
부엌에서 밥은 엄마 아빠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되어요.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는다는 확실한 인증과 확인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연로한 저의 부모님은 늙은 자식인 저에게 여전히 물어보세요. 밥 먹었냐고요. 아이참, 엄마 내 나이가 얼마인데. 그래서 저도 묻지요. 엄마는 오늘 무슨 반찬으로 밥 드셨는지.
밥 한 그릇에 담긴 그 따뜻하고 살가운 온기는 나의 피곤을 물리치고 나의 공허한 배를 채워 나를 평안케 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했을 테지요. 그래서 이젠 알게 되었어요. 왜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밥 얘기를 하는지를요. 어제 먹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고, 오늘 점심으로 차려진 사랑이 분명하니 저녁에 나올 사랑은 확실한지가 궁금했던 거였음을. 나의 애쓰고 수고함이 부엌에서 <불>을 거쳐 사랑으로 바뀌는 것을 나는 귀히 생각해요. 여전히 때때로 꾀가 나고 아, 저녁에 또 무얼 먹지, 하며 한숨이 나오기는 여전하지만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신 몰래 인간에게 건네준 <불>때문에 그는 결국 카우카 소스 산꼭대기에 사슬로 결박당하게 되고, 매일 그의 간을 독수리가 쪼아 먹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해요.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어도 끔찍할 텐데 밤사이 간은 회복되어 다음 날 독수리가 다시 쪼아 먹는 <반복>에 저는 기절할 듯 어지러웠어요. 밥하는 일이 한 번이면 누구나 잘 해낼 수 있을까요? 이 형벌처럼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이라 어려운 일일까요?
결혼 이후로 저는 부엌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불 >을 날마다 켜고 껐어요. 그리고 저는 이제 매일 아침 일찍 부엌에서 키친으로 출근해요.
*그림 인용 :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얀 코시에르(Jan Cossierss, 1600~1672),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전적으로 인간에게 우호적인 신이 있다. 바로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가 유명한 이유는 불 때문일 것이다. 불은 인류사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이 불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외부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추위에도 강해졌으며, 음식을 익혀서 먹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참조 : [신화와 과학-그리스 로마신화 편] 프로메테우스와 진화
오피니언 / Bio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