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이력

by 미쓰조앤

이력서는 나에게 처음이었다.


나는 운 좋게 학교 졸업 전 취업을 했다. 그때는 남편 말대로 이력서에 쓸 게 없었다. 한국에서도 안 써본 이력서를 써보겠다고 의욕은 높았는데 당장 양식을 찾는 단어도 몰랐다. 만만한 둘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Resume Template"을 하사 받았다. 소중하게 타이핑했다.


내 직무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샘플들을 읽고 비교하면서 업무에 해당하는 어휘들을 골라낼 수 있었다. 빵집에서 쓰지 않았던 단어들과 표현들이 쏟아졌다. 스마폰 사용 이후로 컴퓨터 사용이 줄어든 탓에 짧은 문장을 입력하고 수정하는 일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내 힘으로 자력으로 이력서에 써넣을 샘플 문장들을 발췌했다. 빵집에서의 경험과 회사의 업무 내용들을 비교하면서 내가 바리스타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문장들을 찾고 다듬었다. 이력서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미흡한지를 물었다. 내가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팀워크를 잘 유지할 수 있는지, 그에 따른 소통을 유연하게 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 했다. 정해진 양식에 나를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경험과 영어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긴 문장이 아니라 짧은 문장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써내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단 몇 줄 만으로 나를 읽을 수 있다.


허허벌판 같은 이력서에 한 줄 한 줄 문장을 채웠다. 첫 칸에 나를 요약(summary)하는 2-3 문장, 두 번 칸에 업무에 필요한 기능(skill), 세 번째 칸에 경험(experience)을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마지막에 전공/교육을 썼다. 미국의 이력서 쓰기는 이와 같았다.

나는 결혼식 5일 전까지 일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한 달 후에 미국에 왔다. 태평양을 건넜다.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남편의 장기 출장과 업무 강도는 높았다. 내 안의 의욕은 높았지만 미국에서 마주한 나의 현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가운데 세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내가 만난 가장 큰 어려움이 되었다. 아이가 아플 때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나는 네덜란드의 소녀가 되어 바닷물이 살금살금 들어와 무너질 듯한 둑의 안쪽을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는 심정을 자주 느꼈다. 작은 구명으로 자꾸만 들어오는 바닷물에 내가 휩쓸려 갈 것 같았다. 나의 작은 주먹으로 혼자 겨우 막고 서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꾸려나갔던 긴 시간들은 이력서에 쓸 수 없었다. 단 한 줄로도 요약될 수 없었다. 그 의미 있고 한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삶의 변화였지만 그건 이력이 아니었다. 이 소중한 일을 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하는가? 돈으로 환산하면 이 일은 소중한 일이 안된다는 것인가?

Cover letter

나는 이력서에 더해 커버레터(cover letter)도 작성했다. 커버레터는 나와 인터뷰를 할 사람, 제너럴 매니저(인사 담당장)에게 보내는 공식 편지글과 같았다. 이력서의 정해진 양식을 벗어나 내가 이 회사에 지원하는 이유와 나는 그 일에 준비되어 있다는 내용을 담으면 되었다. 내가 적임자이니 놓치지 말고 인터뷰해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두 서류와 함께 오랜만에 청색 재킷을 준비했다. 카페에는 기대했던 세프는 없었고, 프로젝트 매니저 M과 제너럴 매니저 P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는 순조로웠다. 내가 이력서를 쓰기 위해 열심히 찾아서 쓰고 다듬었던 문장들에 이미 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력서 쓰기는 인사 담당자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미리 연습하는 거와 같은 셈이었다. 그래서 제너럴 매니저가 던지는 질문이 낯설지 않았고, 여러 번 수정하고 고치면서 외워버린 문장들로 답할 수 있었다. 웬일인가 싶도록 편안하게 답을 하는 나를 내가 발견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일은 나에게 꼭 맞는 일이다라고.


이력서와 커버레터까지 준비해 간 나를 제너럴 매니저는 매우 흡족해했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생애 첫 영어 인터뷰를 끝냈다.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나의 이력 한 줄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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