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은 없지만 이력서는 쓰고 싶어.

by 미쓰조앤

나는 네가 찾는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나는 세프 AJ에게 마지막 문자를 띄웠다. 이것으로 나의 기회도 접어야 했다. 분명해 보이는 기회를 내가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화살이 남편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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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이 없어도 우리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거주해 왔다. 미국에서 거주를 위한 비자는 종류가 많다. 다만 영주권은 그 유효기간(10년)이 길기 때문에 비자 연장에 따른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유익함과 현지 채용이 가능한 비자다. 미국 회사에 들어가려면 영주권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처럼 빵집에 나갔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빵집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 보이기만 했다. 셰프가 일하는 회사는 이미 한국 기업과 손잡고 있지 않은가? 집에서 10분 거리요 의료보험과 근무일수에 따라 늘어나는 휴가와 병가가 있었다. 근무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3시 30분 퇴근이었다.

나는 셰프를 만나기 한 달 전 10월 초에 영주권 신청을 했다. 시민권자 부모 초청에 해당되었기 때문이었다.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그러나 영주권증을 언제 받을 수 있다는 소리는 중구난방이었다. 빠르면 6개월 이내 나온다는 말부터 1년, 2년 걸렸다 하는 소리까지 누구도 이렇다 장담할 수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오리무중이라 했던가. 자격은 안되는데 확실한 기회 같으니 애만 탔다. 셰프의 회사는 미 전역에 뻗어있었다. 나는 틈틈이 회사 웹의 구인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구인은 많았지만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직무와 지역이 태반이었다.


그 사이 영주권은 서류 접수 후 한 달이 지나자 두 번째 절차인 지문 날인(Finger Print)을 위한 안내 우편을 생각보다 이르게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세프의 카페에서 구인 소식도 올라왔는데 조리사(cook)가 아니라 바리스타였다. 업무 내용을 살펴보니 외려 내가 빵집에서 하던 일들과 많은 부분들이 겹쳐있었다. 나는 마치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양 부리나케 지원서를 재빨리 등록했다.


뭘 믿고?


기쁨은 잠깐이었다. 영주권도 없이 입사 지원을 해놓고 보니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영주권이 빨리 나올지 모르는 일이라며 남일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에게는 3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3개월 안에 영주권이 나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급행료가 얼마가 되었든 있다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사 지원서를 보낸 지 삼사일 지났을까, 인도 셰프에게 연락이 왔다. 조리사 말고 바리스타로 지원했는지를 물었다.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꽥, 지를 뻔했다. 나는 지원서 냈다는 것을 세프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세프와 같이 일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My general manager wants see you.


나는 가슴이 꽁당꽁당 뛰기 시작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건 인터뷰 하자는 말이었다.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아. 영주권도 없는데, 매니저와 인터뷰를... 답 없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 어쩌란 말인가. 남편이 말했다. 제너럴 매니저는 매니저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야. 인터뷰해봐. 자기야, 영주권은? 그건 나중 일이야. 나올 수도 있지 뭐. 말은 왜 이리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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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력서 서류 양식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 미국식대로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보고 싶었다. 발등에 불똥이 튀었다. 아니, 내가 불을 낸 셈이었다. 남편은 태평이 세프가 나를 추천할 것 같으니 이력서 굳이 없어도 될 것 같다고 넌지시 말했다.


너, 쓸 것도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력서에 쓸게 없었다. 제기랄.


그런데 나는 이 말에 굴하지 않고, 나를 기죽이는 이 말에 고무되었다. '써보자. 인터넷에 다 나와있을 거야.' 나는 결의에 찼다. 영주권이 없다는 사실을 내 앞에서 한방에 날려버렸다. 내 현실이 아니라는 듯, 나올 수도 있지 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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