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친구 H에게
출근했단다. 오리엔테이션으로 시작했어. 파란 눈의 제너럴 매니저 P, 인도 사람 수석 셰프 비제이 모두 나처럼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한 새 직장이었더구나. 히히 나에겐 이 사실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리고 나만 여자였다는 것도 포함시키련다. 리카르도, 무하마드, 브랜든, 존 폴, 어시스트 셰프 앤디와 맘씨 좋아 보였던 멕시칸 아저씨, 그리고 프로젝트 매니저 M. 긴장이 되어 눈 만 말똥거리다 집에 온 것 같아.
처음은 셰프 비제이의 안내를 받느라, 두 번째는 매니저 필과 인터뷰하느라 여기 왔던 탓인지 한국 회사가 주 고객이 될 거란 탓인지 오리엔테이션 받는데 그리 떨리지는 않았단다. 빽이라는 말 있잖아. 딱 이해되었어. 내가 스스로 세워둔 거였지만 여하튼 오엔 테이션 내내 고개를 들고 당당함을 옆구리에 앉혀 놓을 수 있었던걸 보니 그렇다. 암튼 영어는 내가 제일 안되는데 나의 표정은 제일 편안했음을 너에게 전하마. 아줌마의 야성이 나온 탓인지, 너의 기도 탓인지 나는 알 수 없단다.
첫날 안전교육받을 때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한 번 발생했어. 전날 인터넷으로 오리엔테이션 관련 문구들을 읽어두었지. 오리엔테이션은 직원들의 안전 교육과 위생 교육이 주 내용이었어. 미리 내용 파악을 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이었는데 난데없이 트레이너가 왜 안전교육이 필요한지를 묻는 거야. 이런 질문은 정해진 답이 없잖아. 다운로드하여서 읽은 것과 아무 상관도 없고. 나의 경험, 생각을 말해야 하는데 이 남자들 앞에서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차례가 좀 멀기라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써먹은 말을 이어 붙이기라도 할 텐데. 내가 두 번째였지 뭐냐. 순간 시야가 좁아지고 동공은 열리고 가슴은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지.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첫 번째 아저씨, 맘씨 후 해 보였던 멕시칸 아저씨의 영어 실력에 흠칫 놀라 입술을 살짝 깨무는데 금세 답을 끝내버리더구나. 두 번째인 나에게 시선이 모아지는데 처음이었어. 눈동자도 여러 사람이 다 함께 굴리면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큰 소리가 된다는 걸 말이야. 어이쿠, 닥칠게 왔구나. 음.. 아.. what is your question? 우와, 순간 다시 질문이 무엇인지 물어본 나의 센쓰! 사실은 질문을 까먹었어. 너무 심각한 사태 앞인지라. Trainer는 천천히 친절하게 다시 말해주었는데 나는 여전히 뭐라 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다가, I have 3 kids... All are boys... 그러자 Trainer가 아, 그래서 안전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라고 나 대신 말해주길래 살짝 미소를 짓었더니, 시간 촉박한 얼굴로 순서를 재빨리 내 옆으로 넘기더라. Trainer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장나 온 아줌마였어. 나의 상황을 간파했는지는도 몰라. 이후는 지루한 안전 교육, 또 안전 교육, 잠시 쉬고 다시 안전 교육으로 이어졌다.
너, 기억나지? 영주권 없이 일사천리로 제너럴 매니저와 인터뷰까지 끝냈다는 나의 말. 매니저는 인터뷰가 끝나자 나를 추천해줄 사람 두 명을 고르라고 했어. 두 명의 추천자와 매니저가 전화 통화로 나에 대한 정보를 더 확인한 후 마지막 절차로 신분 확인을 할 거라고 말했어. 바리스타 한 명 뽑는 일로는 진행 절차가 길다라고 생각할 거야. 결국 한 사람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말하는 거지. 본인 이력서와 추천자 2명, 신분 확인(Back ground)의 과정은 미국 어디서나 일반적인 구직 절차이더구나.
오리엔테이션에 나오기까지 난 살얼음 판을 걷고 있었단다. 위의 모든 절차들을 다 통과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갈 수 있었잖아. 영주권이 안 나오면 도루묵 되는 거잖아. 그런데 신기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어. 영주권 말이야. 서류 접수 한 달 만에 지문 채취 안내 우편을 받은 것부터 시작된 것 같아. 지문 채취가 끝나면 이민국의 인터뷰가 남아있는데 인터뷰 날짜를 잡는 것부터는 어떤 예측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 영주권 서류 신청 접수를 10월에 했으니 11월 추수감사절과 12월 크리스마스까지 감안하면 답이 안 나오는 답답한 상황이었어. 그런데 지문 채취 후 딱 한 달 만에 이민국에서 영주권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는 편지를 받은 거야.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 믿기 어려웠거든.
이민국 인터뷰에는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 해.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지. 인터뷰 약속 2시간 전에 가서 대기해야 하고, 공항 입국 심사처럼 신분증, 소지품 모두를 심사받고 나서야 건물 안 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 나는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이민국 담당자가 아이들 생일을 물어보는 데 두 번이나 틀린 숫자를 말했어. 아이들이 엄마, 왜 그래. 핀잔을 주자 이민국 직원이 외려 웃었다니까. 이민국 건물에 들어오니 내가 외국인임을 다시 느꼈단다. 많은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한 절차를 간절한 마음으로 밟고 있었어. 나도 그렇고. 인터뷰는 나의 실수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어. 사실 인터뷰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거절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며 남편은 말했어. 굉장히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거든.
집에 돌아오니 긴급 뉴스가 나왔어. 민주당과 공화당의 법안 통과 관련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연방정부 셧다운을 강행하겠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 이민국은 연방 정부 소속이잖아. 일 안 해도 정부 공무원들은 월급 나오잖아. 셧다운 되는 동안 모든 서류 진행은 멈춘다는 말이잖아. 나처럼 애타게 영주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는 거지. 이민국의 일처리는 알다시피 느려 터졌거든. 악명이 높다는 말이야. 너는 이해 못할 거야. 여기는 여기 식이 있다지만 이민국 행정 처리는 말로 할 수 없는 불편과 부당함으로 이민자들 외국인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어. 차량 등록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을 나무 느림보에 빗댄 영화를 보았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우리가 인터뷰를 끝낸 그다음 주에 연방 정부는 결국 셧다운에 들어갔어. 그런데 말이야. 나의 인터뷰 통과 서류는 하루 전날에 영주권 발급 부서로 넘어갔다는 거야. 믿을 수 있겠어? 간발의 차를 느낄 수 있냐고? 이런 행운이! 캬악- 오 마이 갓! 내가 너에게 쓰고 있는 이 일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야.
인터뷰를 끝내고 정확히 일주일 만에 영주권증이 집에 도착했어. 거짓말같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나에게 이루어졌어.
오리엔테이션 마지막인 셋째 날에는 파란 하늘이 주차장에 그대로 내려올 기세였어. 청량한 맑고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 순간 송창식의 '눈이 부시게 푸르르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노래가 생각나더구나. 매니저의 파란 눈도 아른거렸어. 그래, 이 좋은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 너를 그리워해야겠다. 네가 여기 있었더라면 깡충깡충 뛰며 나보다 더 좋아라 했을 것을 알기에.
내가 어떻게 여기서 이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을까.
몸 건강 유의하고 또 소식 전하마.
조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