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다. 인도 사람 2호.
인도 사람들은 이름이 굉장히 길었다. 나는 원래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웠다. 세 글자 한국 사람 이름 외는 일도 서툴렀는데 의미도 전달이 안 되는 인도 이름은 그야말로 외계인 말 같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짧았다. 싱(Singh). 그는 매번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였다. 인도 사람들은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큰 일어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크루아상을 사면서 머핀 한 개를 사면서 꼭 따뜻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카페 안에는 전자렌즈가 없었다. 이는 회사의 운영 방침이었다.
애초 회사의 설립자는 많은 미국인들이 정크 푸드를 먹고 있는 것을 주목했다. 캔에 담긴 음식과 전자렌즈에 데워 먹는 냉동식품을 보며 신선한 재료를 로컬 지역에서 구입해서 신선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확고한 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회사는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보호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를 미 전역 카페에서 동시에 벌였다. 나는 오리엔테이션과 회사 매거진에 소개된 이러한 설립 취지에 감동했었다.
인도 사람들은 대부분 커피를 주문할 때 엑스트라 핫을 요구했다. 그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매번 엑스트라 핫이라고 덧붙였고 뚜껑을 열고 설탕은 본인이 추가했다. 그는 나를 건너다보며 일상적인 안부를 물었다.(How are you?) 그러면 나도 일상적으로 대답했다.(I am pretty good, thank you.) 하루는 매니저가 나 대신 그의 커피를 만든 적이 있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그는 작정한 듯이 매니저에게 커피의 뚜껑을 열어서 '내가 시킨 건 라테'라고 말했다. 매니저가 나 대신 만든 커피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카푸치노'라고 정면으로 또박또박 따졌다. 그는 카푸치노가 라테보다 우유 거품이 많다는 차이를 알고 난 후부터 줄곧 라테 먹었다. 나는 그 일 때문에 그의 용기 아닌 용기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그 정도는 그냥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확하게 자신이 주문한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가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카페에 들어섰다. 주말에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다. 월요일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날씨에 대해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는 주말에 책을 읽었다고 무심히 말했다. 그는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물었다. 나는 주말에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었는데 다 마치지는 못했다. 나는 그대로 한국 작가가 쓴 역사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하자 그도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응했다.
나에게 인도는 먼 나라였다. 내 경계 밖의 나라였다. 달과 같다고 할까. 내가 굳이 찾아서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그 먼 나라에서 온 사람과 나는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순간 신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처음으로 인도 역사라고 구글 창에 타이핑했다.
인도는 거대함 그 자체였다. 국가 면적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으며, 인구는 13역 8천만 명으로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도대체 이렇게 큰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내가 지금껏 몰랐다는 게 오히려 수상쩍었다. 나의 시선은 지도에서 왼쪽으로는 중국에서 멈쳐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미국에서 멈췄다. 나는 미국 아래 멕시코와 위 캐나다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나는 우선 그가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궁금했다. 그는 인도 북쪽 펀잡이 그의 고향이라고 말했다. 인도 북부 펀잡 지역은 곡창지대로 유명하고 무엇보다 시크교도의 본고장이었다. 나는 구글에서 얻은 정보에 기대어 시크교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에서 터번을 쓰고 있는 남자들이 있다면 시크교 도라는 것을 안 지는 얼마 전이었다. 그는 종교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강조해서 말했고, 그의 부모님들은 캐나다에 거주하고 계신다 했다. 인도가 영국으로 독립한 후 인도 내 종교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당시 시크교도들에게 큰 피해가 있었고 그 분쟁 이후 시크교도들이 캐나다로 대거 이주를 했다. 물론 그가 이러한 배경을 말하지는 않았다.
From 사이프 블로그 내가 살던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는 말로 그가 더 친근해졌다. 싱이 찍었다는 밤하늘의 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랜 시간을 밖에 나가 기다긴 끝에 찍은 별 일주 사진은 나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이 사진에 담겨있었다. 그의 성격도 그러하겠구나 짐작되었다.
그는 작년 추수 감사절을 마지막으로 그의 회사에서 퇴사한다고 전했다. 오래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묻어있었다. 오랫동안 그 회사에 일한 탓인지 가족 같다고 말했던 걸 난 기억한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결심한 것은 큰 도전이라고 전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그의 사진 속에 담긴 그의 성품을 미루어 그는 어느 곳에서도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짧은 메시지로 나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가 늘 주문하던 라테가 생각난다. 아침이면 그는 라테 한 잔과 밝은 미소로 나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짧은 순간순간 우리는 달처럼 먼 거리를 좁혀 서로의 안부와 고향을 묻고 부모님들의 안녕을 물었다. 나는 그가 아니었으면 인도에 대해 그리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일하면서 영어가 문제가 된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비록 영어가 부족할 지라도 상대를 향하여 존중의 태도로 그들의 요구를 정중하게 듣고 최선으로 응대하려는 마음을 그들은 쉽게 알아차렸다. 나에게 외려 친절하게 그들의 속도를 낮추어 말해주었고 서툰 내 영어에 귀 기울여 주었다.
손님들로부터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내 자리 컴퓨터에서 주문서, 티켓이 프린트된다. 나는 그 하얀 티켓을 전보 같다고 생각했다. 편지로 생각했다. 그 주문서에 깨알같이 적힌 요구 사항을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받았다. 더 뜨겁게, 물은 적게, 시럽은 달지 않게, 우유는 너무 뜨겁지 않게, 30분 후에 픽업하겠다까지... 그러다 그 티켓에 누군가 Thank you라는 메시지를 남기면 나는 너무나 기뻤다. 나의 수고와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은 봄볕으로 가득해졌다. 내 안에 얼음들이 녹아내렸다. 이 여덟 자 알파벳은 내 안에 살아서 파닥거렸다.
그렇다. 나는 인도 남자 2호가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마다 나에게 건너오는 하얀 티켓을 편지로 받았다. 그러면 신기하게 그 새하얀 종이 위의 글자가 마음을 움직였다. 내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다.
인도 남자 2호에게 이번 추수감사절에 연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직 한 회사에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코비드 19가 터졌다. 그는 그것으로 3개월 동안 직장을 잃었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일할 회사를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반갑기가 무섭게 그는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코비드 19가 잠잠해지는 시기라는 단서로 덧붙였다. 그전에 꼭 나를 보러 오겠단다. 나의 브레이크 타임에 맞추어 카페에 들리겠노라고.
정현종의 시는 나에게 붙들어야 할 책과 같았다. 나는 시인의 마음 그대로 일했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이 시인의 마음으로 이 시를 마음에 품고 일했다. 시는 나를 붙들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펀자비 : Punj(5) + Aab(강) = Punjab(펀잡) 사람.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5개의 큰 강이 흐르는 땅이자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전쟁과 격변이 일상화된 지역으로 힌두와 무슬림 교리를 혼합한 Sikh교가 이 지역에서 발원했다. 인도 군 장교의 절반이 펀잡 출신이고 미국 등 해외 거주 인도인 중 펀잡 사람들이 대부분 주유소, 운전기사 등에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출처:이데일리 <김문영 관장의 인도 상인 이야기> 북인도 터줏대감 '펀자브 상인'
**싱(Singh)은 사자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