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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y 01. 2021

얘들아, 엄마는 열심히 일했어

윤여정 수상소감

비토리 마테오 코르코스, 1896년 / 꿈

<윤여정의 성취>
.

꿈을 이루다
.
혼자였기에 이루어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결혼>이라는 견고한 성. 그 안에 있는 책무와 책임과 집안일을 반반 나눌 수 있었다면, 그녀의 성취는 역시 가능했을까, 의문이 든다. '나누어야 한다는, 나누겠다'라는 따위가 나의 머리에 경험 안에 있기나 했었나? 그렇지 않았다면 그건 또 왜일까...

미국 SAG Award(Screen Actors Guild Award)'여우 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의 소식을 들었다. 오늘 유튜브로 그녀의 수상소감을 브레이크 타임에 나도 지켜보았다.

'I'm luckier than you" 나는 너보다 조금 행운이 따랐을 뿐이야.

그녀의 이 말은 수상 후보로 올라왔던 다른 경쟁 배우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나는 생각지 않았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많은 이들 특히 주부, 아내라 칭해지는 더하여 다른 이름으로 칭하되 같은 입장에 서있는 모두에게 향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열심을 다해 일하고 있는 내 자리와 내가 일한 그 경력이 가치롭고 수고로움으로 인정되기를 모두는 바라 마지않기 때문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녀는 행幸이라고 믿었던 한 남자와 헤어졌다. 불행의 자리에서 따가운 눈초리 가운데 먹고살기 위해, 두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해, 진 배역 마른 배역 가리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치열함이나 절실함이라 둘러말하기도 하지만 실상 그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요 치졸함을 마셔야 하는 것이요 뻔뻔함을 키워야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의 선택은 가당치 않으며 다른 이의 간택을 구원처럼 기다려야만 했던 막막한 시간들이었음이 분명하지 않았겠는가. 그러함 속에서 내가 열심히 살아왔다고 '증거'할 수 있는 트로피를 손에 쥐고 다 자란 두 아이들을 향하여

'내가 나가서 일할 수 있도록' 인정해 준 것을 감사하다고. '엄마는 열심히 일했다'라고 전했다.

나는 이 유명하다는 배우를 잘 모른다. 요사이 더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로 어제 오늘 그 이유와 단서들을 몇 가지 주웠다. 그녀가 '나'로 설 수 있었던 계기는 이혼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온전한 결정이었든 아니었든. 그것이 '그녀'를 그녀답도록 만드는 단초가 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 길에서 그녀는 철저히 홀로 '나'와 대면해야 했을 것이고, 악다구니 쓰는 자세로 세상과 직면하며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능력'은 발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강한 호기심과 갈구와 필요가 들어오면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잠자고 있던 능력을 한순간 꺼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기회와 상황을 내가 외면했거나 또는 차단되었거나 내가 포기했을 뿐.

손뼉을 쳤다. 기립박수를.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 '서있는' 한 사람에게 보내는 눈부신 찬사로. 나 또한 여전히 그러한 길을 걷기 원함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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