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 혼자로 한 세상이다
오늘은 둘째가 이사하는 날
2021년 5월 1일 흐림. 주저주저하던 비의 폭우를 뚫고 집으로 돌아옴.
둘째의 이사는 벌써 세 번째다.
1학년 때부터 기숙사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는 가격 대비 시설이 낙후하고 수업이 주로 있는 건물과 멀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친구를 통해 필요한 아파트를 찾았다고 했다. 마침 기타로 더 가까워진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기로 미리 점찍어 두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흐뭇해했다. 두 아이들이 흡족해하며 구한 첫 아파트는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위치와 가격과 아파트의 시설 등을 최대한 고려하여 이른 결정을 내렸던 탓에 둘은 대학 첫해를 수월하게 시작했다. 두 아이는 어른의 세상으로 마침내 첫 발을 내디뎠다.
미국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공식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는다. 학교로 떠난다는 말은 부모의 보호를 벗어난다는 말과 같다. 자신의 행동에 따른 책임이 무거워지는 대신 사랑과 보호라는 부모의 간섭을 뒤로하고 '자유'가 무한정 주어지는 셈이다. 자고 일어나는 일부터 행동과 활동 반경에 제한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고등학교까지 차가 없는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치 않기 때문에 일일이 부모에게 자신의 동선을 보고할 수밖에 없는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빗장 풀리듯 그동안의 제한이 일순간 걷히게 되는 것이다. 일찍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어른들의 대처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도 법적으로 18세가 끝으로 아이를 위한 책임을 다했다고 인정한다.
이번에 이사는 마지막 4학년을 위한 것이었다. 원룸 스튜디오로 옮기겠다고 했다. 룸메이트 없이 혼자 살아보겠다고. 둘째는 3년 동안 같은 고등학교의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했는데 나는 이것이 새 학교에 적응하는데 큰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은 여전히 중요하다.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처음 접하는 것이고 부모의 자잘한 도움이 미치지 않은 환경에서 낯선 아이들과 같이 생활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역시나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주립대학은 학생 수가 정말 많다. 특히 텍사스의 탑 두 대학교는 그 규모와 학생 수가 많기로 손에 꼽힌다. 반면 동양계 학생 수는 적은데 전공으로 선택한 컴퓨터 사이언스가 공과대라서 인도, 중국계 학생들이 그나마 많다.
서둘러 짐을 쌌다. 하늘을 보니 꾸물거리고 주춤하던 비가 쏟아질 듯했다. 대부분의 짐은 8월 중순 새 학기 개강 때까지 스토리지에 넣어두고 일부는 집으로 가져와야 했다. 오늘은 사실 이사라기보다 방의 짐들을 빼어 스토리지로 옮긴 것이고 개학 전에 이 짐을 새 스튜디오로 다시 옮겨야 한다. 룸메이트 친구가 함께 도와주어 빨리 일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비구름을 머리에 이고 오는 것처럼 비가 2시간 동안 연신 쏟아져 내렸다. 아이 혼자인데도 짐이 적지 않았다. 기타만 몇 개인가. 옷가지 수하며. 작은 밥솥까지. 나 한 명 사나 다섯 식구가 함께 사나 살림 가짓수는 별 차이가 없다. 있을 건 다 있어야 한다더니. 나 혼자라고 저절로 홀가분해지는 것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나는 나 혼자로 한 세상인 것이다. 둘째도 이제 저 혼자 한 세상을 이뤘음을 보았다. 밥솥이 그 증거 같았다. 미국에서 냄비밥을 짓는 엄마처럼 이 아이의 근원도 밥으로 시작되었음을. 미국 땅에서 태어났지만. 빵도 먹고 타코도 맛있게 먹지만.
9시에 겨우 집에 도착했다. 달라스 근처에는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미역국, 사연 있는 열무김치, 섞박지 그리고 오이지를 꺼내어 둘째를 위한 밥상을 오랜만에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