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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y 06. 2021

김치의 수난

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어머니의 배추


정일근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가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 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를 이제 사람은 읽지 않은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도 뒤따라와서 읽는다
그 소식 듣고 밤새 기어 온 민달팽이도 읽는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을 쉬는 저 詩

어머니의 詩








배추/ Napa Cabbage @월마트 생산은 캘리포니아에서.

김치 담그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늘 부담이었다. 한동안 김장을 했었다. 달라스로 이사 온 후부터였다. 그야말로 그때마다 김치 양념은 내 마음대로였는데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으며 담가었다. 오래전 겨울을 앞두고 엄마가 하시던 김장의 기억만으로 흉내를 내었다. 내가 먹어 본 경험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버무려 그럭저럭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을 떠나 타국에 가도 한국 사람들은 비슷한 야채와 양념을 가지고 김치를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몰랐지만 이는 내 몸에 배어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못하려고 해도 못할 수 없는 것. 이는 반대로 외국인이라면 따라 하기 쉽지 않다는 말과 같았다.

함께 일하는 인도 셰프 제이제이는 한국 음식을 쉽게 생각했다. 나는 의아했던 것이 한국 음식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고 눈대중이고 손맛에 따른 편차가 큰데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사람에게 김치와 고추장, 된장이 주요한 부식과 양념이라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본인 할머니가 한국에서 살다 왔다는 너스레를 떨며 한국 음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그의 음식 이력에 자랑스럽게 보탰다.

식당의 안쪽 부엌은 군대처럼 규율이 엄격하다는 걸 일하면서 알았다. 직급에 따른 상하 구분이 그러했다. 내 눈에는 셰프의 권위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높았다. 나는 셰프 제이제이의 만남을 통해 입사했기 때문에 그가 나를 신뢰한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인도 사람이고 그 나라 사람 특유의 계급의식에 기인하는 거만함이 그의 몸에 스며있다는 것을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인도 남부 출신으로 호주 유학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그에게는 인도식 영어 악센트가 거의 없었고 영어가 유창했다.

그의 거만함이 부담되었으나 나는 셰프 아래에서 일하는 쿡 포지션(Cook position)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나의 업무는 최고 매니저(General Manager) 쪽에 속해 있었다.

나는 한국 음식에 관한 그의 터무니없는 자만심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김치에 관해서 만큼은 그도 별수 없는 외국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김치 담그는 방법을 절대 나에게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의 할머니는 한국에서 살다 오신 분이라 그의 한국 음식 실력은 이미 높다는 거였다. 이 말은 물론 농담이다. 웃자고 하는 그의 썰렁한 개그다. 나는 한국 음식에 대하여 진지하지 않은 그가 그래서 못마땅했다. 그가 만드는 한국 음식은 솔직히 맛이 없었는데 내 눈엔 배우려 애쓰지 않는 그의 자세가 더 궁금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일체 이에 관여할 수가 없다. 내 업무 영역이 아니므로 그가 내게 직접 물어오기 전까지는.

한국의 김치는 이제 한국을 떠났다. 일본에서 중국에서 미국에서 김치는 각각 현지인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입맛과 같을 수 없다. 한국 고유의 맛을 타국 사람들이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는 구하는 재료가 비슷하나 틀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한국 고유의 맛이 어떠한지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김치의 영양 성분에 따른 효용성을 더 크게 감안할 뿐.

미국 한인 마트에서는 한국분들이 만드는 김치와 밑반찬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에 큰 한인 마트가 있다는 것은 타국 생활에서 큰 감사함이 아닐 수 없다.

셰프는 한국 음식에 대한 어설픔 속에서도 김치는 직접 담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맛으로 치자면 가까운 한인 마트에서 사면될 텐데 말이다. 셰프가 직접 하는 일은 양념을 만드는 것뿐이다. 배추를 절이는 준비 단계는 쿡 포지션들이 담당한다. 그러나 김치는 절이는 것이 반이다 라고 할 만큼 이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나는 늘 조바심이 났다. 김치 절이기는 나에게도 제일 어려웠는데 제일 정성을 들여야 할 단계를 김치에 대해 아무런 이해도 없는 쿡 포지션들에게 맡겨놓은 셈이니 왜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는 침묵해야 한다. 내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절이기 : 굵은 소금이 아니라 간을 맞추는 고운 미국 소금을 사용함.
2. 양념하기 : 셰프의 비밀 김치 양념으로 어설프게 버무린 포기 김치들.
3. 숙성시키기 : 왜 이 무거운 통조림 캔을 올려 놓았을까? 원인은 배추 절이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김치는 지금 수난 중이다.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인도 셰프의 지휘 하에 멕시코 조리사들이 만드는 김치를 정작 한국 사람인 나는 먹지 못하고 있다. 나는 셰프의 김치 양념이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이는 절대 물어보면 안 되는 영역이다. 토를 달다간 내 목이... 그러나 나와 셰프의 개인적 친분 관계는 아주 좋다. 업무는 업무일 뿐이다. 다만 나는 아쉬울 뿐이고.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몇 번 같이 일해보겠냐고 그가 제안했지만 난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 음식은 고사하고 그의 거만함과 자만심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결국 김치의 수난으로 한국 손님들에게 맛있는 김치를 여전히 제공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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