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공항에서 내려 둘째의 숙소로 갈 때 난 배가 고팠다. 둘째는 바로 조나단에게 전화를 했다. 둘째의 단짝인 조나단은 먹는 것에 관심이 많단다. 조나단은 필리피노 아메리칸이다.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하고,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많아 어디에 가면, 어디에 가서는 꼭 먹어봐야 한다는 먹을거리가 머리에 훤한 아이라 했다.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해물을 넣고 만든 카레가 너무 맛있었다고 학교로 돌아가 필요한 재료들을 사서 만들어보는 그런 아이였다. 둘째의 친구들이 흥미로웠던 건 모두들 음식에 관심이 많다는 거였다. 이번에 아마존에서 인턴십 과정을 함께하는 룸메이트 앤디는 차이니즈 아메리칸인데, 특히 앤디가 요리사와 다를 바 가 없다고 했다. 둘째가 공부하는 아파트에 가보면 중국요리에 필요한 각종 양념이 부엌 한편에 가득 차 있었다. 둘째도 뒤질세라 국물 멸치와 된장과 고추장 등을 구비해 두었었다. 1, 2학년 때 아이들은 같이 장을 보고 관심 있는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먹곤 했다. 둘째는 카레도 만들고, 된장국, 뭇국 등을 만들었는데 앤디의 음식 솜씨는 정말 좋다고 했다. 한 번은 둘째가 전화로 닭발을 어떻게 만드냐고 물었는데 사실 난 딱 한 번 먹었던 기억으로 구글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별게 다 관심이다 싶었는데 앤디와 같이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다고 후에 전해 주었다. 조나단은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포케를 잘하는 집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어놓고 바로 포케 집으로 향했다. 둘째의 숙소는 시애틀 북쪽 다운타운 54번가에서 가까웠다. 아마존 본사와는 10분 거리이고 워싱턴 주립대학이 코앞에 있었다.
둘째의 숙소 옆
숙소 뒷편
시애틀에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은 나무들을 보고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무들의 키가 훨씬 컸고 잎 크기도 매우 커서 달라스는 말할 것도 없고, 캘리 포니아의 나무들보다도 훨씬 무성하였다.
5월의 시애틀은 다양한 꽃들로 발 닿는 곳마다 알록달록 꽃잔치 중이었다. 포케 집은 워싱턴대학 큰길 건너편에 있었다. 숙소에서 가까웠다. 그런데 포케 집은 예상과 달리 음식점이 아니라 작은 편의점 한쪽에서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나는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화장실에 가려고 했는데 공중 화장실이 아니라는 사인이 붙어있었다. 이건 뭐지 싶었다. 음식을 파는 곳에서 화장실은 알아서 해결하라니. 아이들과 밖으로 나와서 공중 화장실을 찾았으나 모두 같은 내용의 사인을 붙여놓은 곳들만 보였다. 엄마, 가게들이 작아서 그런 것 같아요. 큰 가게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저 건너 피자집으로 가요. 피자 먹을 것 아니잖아? 알았어. 일단, 가보자.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사인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리로 발길을 막 돌렸을 때 Mam, This is not a public restroom! What?! 둘째가 공중 화장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고 묻자 주유소에 가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밖으로 나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주유소? 걸어 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먹고, 이것저것 살 수 있는 동네에서 공중 화장실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라니, 원.
주유소에서 물을 샀다. 화장실은 열쇠도 필요했다.
...여기는 달라스가 아니지, 참. 시애틀 북쪽 명색이 다운타운. 협소한 길들 양편에 편의점, 음식점, 상가들이 즐비한 곳이지. 차보다는 걷기가 더 편한 곳. 달라스처럼 평평한 땅이 아니지. 바다와 산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곳. 언덕길과 비탈길에 건물을 지어 올려야 하는 곳. 화장실은 미리미리 해결해야 하는 곳이구나. 어디에 있는지도 미리 확인해야하구, 흠.
우리는 볼 일을 다 보고 느긋해진 맘으로 그 포케 집에 다시 들렀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편의점 한편에서 마스크를 벗고 작은 공중 장소에서 아이들과 나란히 조나단이 추천해 준 포케를 맛있게 먹었다.
...조나단과 둘째는 대학 3학년이지, 참. 이 포케는 학생들에게 가성비 좋은 포케란 말이었구나. 제대로 된 의자와 식탁에서 먹지 않는 대신 저렴하면서 신선한 튜나를 얹은 포케를 먹을 수 있는 곳. 돈을 절약해야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입소문 난 포케이었구나. 기특한 것들, 이리 알아서 잘하다니, 참. 엄마,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너희들이 알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