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의 팡세'를 떠올리며
바닷가에 서서 파도를 보고 파도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열음을 들으며 나는 바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숨은 쉬어야겠다 싶어 얼굴이 잠기지 않을 정도의 깊이까지만 들어가 본 것이 고작인 내가 바다에 관해 무엇을 안다고 그림을 그렸던가 싶었던 것이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일 텐데 바다를 그리면서 나는 얼마만큼의 깊이에 빠져보았던가.
스물몇 살에 읽었던 김승희 작가의 '33세의 팡세'를 떠올렸다. 일기를 훔쳐보듯 흥미롭게 읽었던 그 책에서 내 기억이 맞다면 작가는 처음 바다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고 적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크기와 어떠한 소음도 삼켜버리는 거대한 소리는 작가에게 충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리라. 물에 빠져본 적은 없지만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의 딸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열몇 점의 바다에 관한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바다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파도를 마주하면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떨림, 끝없이 이어지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에 대한 감상이 그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해 바다에 대해 내 키만큼의 깊이도 담아내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