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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Dec 09. 2020

빵틀을 말랑하게, 구더기가 나와도 장을 담그도록

거울 앞에 선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나를 마주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내가 나로 살아온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나에 대한 기대나 이상향이 명확할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데 나를 마주보는일을 어려워하기 시작하면 많은 것이 힘들어진다.

나를 마주볼 때 보이는 결점들, 부족한 점들 모두 어찌할 수 없다면 결국 바꿔야 할 것은 나이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건,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있는 인생이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나타났을 때, 용기 내어 손 뻗어 잡을 수 있는 것.

그것 또한 용기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겠지만 어찌되었든 용감한 자만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일은 쉬워지지만 연애는 어려워진다.

연애가 어려워진다고들 이야기할 때 흔히 주변에 다 결혼하고 남은 사람이 없다거나,

이제는 주변에서 다들 결혼만 찾아서 보는 눈이 다르다거나,

우리 나이에는 연애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예전처럼 마음을 열 준비가 안되었다거나,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 기존의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그 사람을 넘겨짚어 판단한다거나,

그 사람의 객관적인 결점 한 두개때문에, 즉 콩깍지를 쓰지 못하고 완벽한 사람을 찾는다거나

이유는 많다.


물론 외부적인요인, 내부적인 요인이 복합적인 것이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좋아해보겠다고 하면,

그 사람의 결점을 그러려니하는 마음과 게임에 베팅에 걸어보는 대담한 마음

그 오묘한 조합의 결실이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 또한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나이가 들수록 연애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주변 사람이나 환경의 문제도 있지만,

적지 않은 비율로는, 내가 굳어진 내 기준을 유연하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 자체가 모순인 것은 연애란,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게다가 사랑을 한 번 해보겠다고 견디는 일이란,

애초에 내 기준같은건 빵틀처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고 어색하겠지만 그러한 나만의 빵틀을 말랑하게 만드는 일,

때로는 틀 없이도 빵을 구워보겠다고 마음 먹는일,

그런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 결심들을 부질없다고 생각하거나,

나만그러면 뭐하냐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눈 앞에서 또 한번 연애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부딪히고, 마음의 스파크를 느끼고,

그 이후에 안타깝게 스파크가 화력으로 발하지 않으면 아쉽고 슬프지만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는 일보다,

담근 장이 잘 익지 않는 일이 더 나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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