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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Dec 25. 2016

내게 너무 늦지 않았다 말해주던 빨강머리 앤

책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스마트하고 편리한 세상, 흔히들 들을 수 있는 문구이다. 자칫 생각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톱니에 잘 맞물려 돌아가는 듯 느껴지는 이상적인 세상.


하지만 어떤가? 저 말은 빠르고 속도전이며 모든 것이 정신없이 진행되어 내 혼을 빼놓는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그럴싸하게 꾸미는 문구이지 않은가?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너무 늦지 않은 우리들에게...


요즘 내가 읽는 책의 제목들이 나를 말해준다.


행복해 지는 방법에 대한 책들,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무섭도록 읽어내려가고 그 의미를 다 이해했는지 스스로 조차 의심스럽지만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행복에 관한 책들을 다 읽을 기세로 눈에 불을 켠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참 아이러닉하게도 이런 내 책의 취향들이 내 상황을 설명해준다. 나는 지독히도 불행한 것이다.


읽고 쓰는 행위에 위로받는다 생각한 내게, 꽤나 긴 시간동안 행복에 대한 책을 읽고싶다는 갈망을 안겨주는 것은, 그만큼 지금 내게 행복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 아닐까?







앤은 사과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선 길에 사과꽃이 활짝 피어있는 봄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느낀다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길을 행복한 하얀길이라 명명하기로 한다.

스마트폰의 푸쉬 팝업 알람과 지하 10층에서도 빵빵 터지는 LTE 통신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 행복한 하얀길에 갔다면,


우리는 과연 그 길을 사과나무길이 아닌 다른 어떠한 이름으로 부를 상상이나 했을까?


내가 불행한 것이 환경탓이며, 사람탓이고, 요즘 사회가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불평과 불만이 무엇을 바꿔줄 수 있을까?


대안이 없는 비판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방관론적 입장이라 생각한다.


혹여나 환경이, 사람이, 사회가 나를 불행하게 한다면,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떠올려야 할 것이다. 내 목적은 불행의 원인을 논리적으로 규명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아니라, 어찌됐든 다시 행복한 나로의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껴진다 생각한다. 앤은 진정한 친구의 소중함을, 그들이 옆에 있어 준다하여 당연하게 여기거나 하찮게 취급하지 않는다. 가장 소중하고 모든 일에 우선을 사람으로 두는 것이다.

누군가를 잘 믿고, 잘 이해하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며 내가 남을 대함에 있어 그러한 진실함으로 상대할 때 더욱 쉬워질 것이다.


즉, 내가 남을 속이려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며 항상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관계를 해 나간다면,

누군가 내게 접근하여 베푸는 모든 친절들이 자연스럽게 순수하고 진심이라 생각하게 될 것인데,

내가 누군가를 속이려 하고, 이해하지 않으며, 가식으로 상대한다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소중한 인연들이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이라 해도

내 눈에는 추하고 악하며 역한 것으로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앤에게 친구가 가지는 의미 만큼이나,

나라는 사람도 친구가 가지는 의미가 큰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친구는 부모님, 친구, 연인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내 속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들은 내가 그들과 다르다 할 지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충분한 의시가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빠르고 삭막하고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안부를 건내는 사람.

용건 없이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려주는 친구..

그 존재가 내 눈물을 나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픈 남자친구 병간호하느라 우리는 하루종일 침대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별한 데이트를 하거나 인파가 북적되는 축제의 공간에 가지 못하는 것은 내게 조금의 실망도 주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의 건강을 진심을 다해 걱정해 본적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의 스쳐가는 인연이나 깊지 못한 감정들은 언제나 나의 피로함, 내 컨디션에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능력이 있나 할 정도였으니까..


그 덕분에 우리는 누워서 하염없이 TV 채널만 돌리다가 어쩌다어른에서 김경일 교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침 밥을 먹고 있던 우리..

그의 몇마디에 나는 수저를 들고 통곡하게 되고 맞은편에 앉아 같이 밥먹던 남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하며 당황만하던데.ㅎㅎ


김경일 교수는 인간이 언제 가장 행복할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패널들은 대답했다.

돈이 많은 때, 인정 받을 때, 가족들과의 시간이 소중할 때, 하고싶은 일을 할 때,


대답은 거창했지만 교수의 표정은 평화롭게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이어 대답했다.

"용건 없는 전화를 받았을 때 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목적도, 용건도 없는 전화를 받아

안부를 궁금해하는 상대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때,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에 붙여 교수는 설명했다.

자신의 막역한 경상도 친구가 가끔 수원을 지날 때 마다 포근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

"경일아, 내다~"

한단다. 그럼 교수는 "응, 왜~?, 어쩐일이야?" 혹은 "오랜만이야, 왠일이니?" 라며 목적성을 갖고 질문하고,


그럼 그 친구는 우스운 듯이 조용히 웃으며

"그냥.. 보고싶어서~ 잘 지내제?"

한단다.


대화가 그쯤 되면 교수는 이 친구의 마음 씀씀이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작아지며 얼굴이 화끈거린다는 것이다. 목적없는, 용건없는 안부전화에 용건을 묻는 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못난 일인가?


아무리 바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 상황은 매우 부끄러운 상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빨강머리앤과 김경일교수의 경상도 친구, 두 사람 다 내게 해주는 얘기는 한가지로 귀결된다.

같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쓰는 사람이라도 물론 다른 결과를 해석할 수 있겠지만, 모든 오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아닐까?


두 사람은 내게 행복하려면, 사람을 보라 한다.

내 옆에 사람을, 우리 집에 사람을, 내게 걸어온 전화기 뒤의 사람을...

그리고 무엇보다 거울에 비친 나라는 사람을...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사람으로써의 내 의미를 찾는 이상,

돈, 일, 명예, 가족, 여행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해야한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뜻깊은, 기대치 않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지독한 독감에 걸려 데이트 그 비슷한 것도 못하고 있지만,

사람을 보라는 앤과 교수 친구 말에 귀 기울이기로 한다.


사람을 알아가며 산다는게 참 어려운 세상이다.


이 세상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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