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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Jan 31. 2020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2020년을 맞아 남편과 3가지 챌린지를 약속했다. 그중 하나가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어길 시 상당히 부담스러운 벌금을 내 걸었기 때문에, 꽤나 필사적으로 - 특히 월 말이 다가올수록 매우 초조해졌다 - 책을 읽어 내려갔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 지음> 은 토토가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어디선가 추천받았는데 출산 전에 읽으려던 계획이었으나 토토가 태어나고도 한참을 책 펼쳐볼 짬이 없었다.

많은 육아 추천서 중 이 책이 끌렸던 건, 저자가 여성학자여서 였다. 사실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수식어 중 하나는 세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엄마가 쓴 책, 그중 둘째가 가수 이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작가의 말로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소개문이라지만 말이다. 그건 둘째치고 나는 여성학의 관점에서 육아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을까 매우 궁금했다. 이적의 대표곡 외에 그 가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차, 무한도전 못친소에 나왔었지. 이렇게 한 사람의 흑역사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여성학자인 어머니를 뒀다는 것에 왠지 남다른 양육을 받았을 것 같다는 역 편견(?) 같은 생각도 들었다.

사족이 너무 길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벌금을 피하기 위해 다소 숙제하듯 읽은 면이 있지만 1독을 한 직후 남은 감상은 이렇다.


한비야 선생님 투의 말씨가 느껴졌다. 이것이 좋은 의미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다 맞는 말인데 왠지 일방적인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열린 사고를 가진 것 같지만 대화를 격려하기보다는 큰 목소리로 혼자서 와르르 말 다하고 퇴장해버리는 느낌.


하지만 분명 정신 (spirit) 자체는 대부분 동의하는 바가 많았다. 여성이 엄마로서 사회적으로 강요받는 성역할에 대해 코웃음 치며 제 멋대로 살 아내 버리는 모습, 아들 셋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사회에서 바라는 남성성을 요구하지도 부추기지도 않는 부분 역시.

특히 교육관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동의를 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서열 매기는 문화, 비교의식, 엄마(학부모)들의 자녀를 통한 뒤틀린 자아성취를 비꼬는 것들 등.


"무엇에나 등급 매기기를 좋아하는 사회답게 사람들은 아이들의 석차를 알고 싶어 한다. 어느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전할 때도 꼭 '전교에서 1,2등 하는 애'라고 해야 직성이 풀린다... p.124


이 분이 세 아들을 키웠을 때가 최소 25년에서 30년 전이니,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까? 엄마들(학부모)은 아직도 아이들의 성적에, 1,2 등 한 것에 집착할까? 하는 질문은 순진한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남편이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한단다. 작가가 아이들을 키울 때 살았던 강남 지역에서 '우리 애는 몇 등했어'로 서열을 매겼다면 20-30년이 지난 후 '우리 애는 몇 년 선행하고 있어'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변해도 남의 집 아이보다 뒤처지는 걸 못 견디는 건 강남에 사는 학부모만을 탓할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네는 모든 것에 우열을 가리는 풍습이 있는 것 같다." P190


몇 년 전 코스타리카에 산 적이 있다. 국제 대학원을 다녔던 터라 여러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는데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하루는 한 외국인 친구가

왜 한국사람들은 꼭 누구 것이 더 낫냐고 묻냐는 것이다. 김치찌개를 요리해서 맛있으면 됐지, 왜 내가 한 게 아무개가 한 것보다 맛있냐고 비교를 하냐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 친구 영어 잘한다며, 미국에서 살다 온 누구누구보다 잘해?' 하다못해 '내가 끓인 신라면 맛있지? 며칠 전 먹었던 그것보다 낫지?'

생각해보면 영어로 대화할 때 그런 식의 비교급으로 질문을 하면 굉장히 말이 어색해진다. 아니, 그런 말은 네이티브들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언어에 문화가 담긴다는데, 우리도 모르게 비교와 경쟁심리가 말에 들어간 것일까?


공감을 이루어내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은 좋은 부분도 많았다. 지난 포스팅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특히 초반에 '아이들을 키우려고 하지 말고 부모가 자신을 먼저 키울 것, 그리고 따뜻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라는 메시지가 그중 하나이다.


방법이나 자세를 떠나 세 아이를 키워냈다는 데에 작가에게 진정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요즘 토토를 키우며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적어둔 것 같아 밑줄 쳐둔 글로 마무리한다.


"갓난아기 시절에도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언제나 빵끗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난 내가 이렇게 예쁜 아이들에게 이런 눈부신 웃음을 인사로 받아도 될 만큼 좋은 엄마일까 하는 생각에 늘 켕기곤 했다. 아이들에게서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확인하는 느낌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근사한 것이었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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