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7개월 된 딸에게는 없어서 안될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애착 이불이다. 흰 바탕에 검은 물감을 흩뿌린 듯한 이 이불은 손에 쥐고만 있어도 아이에게 몸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모양이다. 태어나자마자 이 이불에 돌돌 싸매여 산후조리원으로 옮겨졌고, 병원 외출에 갈 때도 늘 함께였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엄마 자궁 밖 세상에 적응하기 딱 좋은 5월 말에 태어났기에 후들후들 손수건 재질을 하고도 이 이불은 어디든 아가를 따라다녔다.
생후 3일차, 부리또처럼 이불에 돌돌말려있는 토토
생후 한 달쯤 되었을까.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하루에 일정한 패턴이라는 게 아주 조금씩 새겨질 무렵, 낮잠 재울 때 이 이불을 덮어주면 마치 파블로프의 개 마냥 고개를 오른쪽으로 홱 돌아서 손가락을 빨다 잠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불만 쥐어주면 자동으로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물다 잠이 든다. 때로는 엄마인 나보다 이 이불이 아기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불을 만지면 엄마의 포근함이 느껴져서일까? 덕분에 나와 남편은 아이가 울거나 잠투정을 할 때 비교적 쉽게 달래고 재울 수 있었고어디를 가든 반드시, 제일 먼저 챙기는 '육아 꿀템'이 되었다.
토토에게 행복이란, 엄지손가락과 이불.
이불의 묵직한 존재감을 알게 되고 남편은 같은 이불을 한 10개 정도 사두자고 했다. 남편과 나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챙겨야 할 물건을 깜빡하는 경우가 매일같이 있어, 우리가 자주 가는 장소에 한 장씩 두자는 이야기였다. 이를테면 친정집에 한 장, 시할머니 댁에 한 장, 차에 한 장, 빨래할 때 대체로 사용하기 위해 한 장...
이쯤 되면 우리 아이의 애착 이불이 아닌, 부모의 애착 이불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그래도 10장은 과하기에 일단 한 장을 더 사보았다. 친구의 아기들 중 예민한 아이는 '원본'과 '사본'을 기가 막히게 구별해서 난감한 경우가 있다고 했으니. 다행히 토토는 무던한 아이였고 새 이불과 헌 이불 사이에 편애(?) 하지 않고동일하게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이 천조각이 언제까지 아이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지 모르겠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불을 늘 지닐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될 테고, 굳이 이불이 아니어도 두려움과 불안을 숨길 수 있게 되겠지. 나와 남편에게도, 투명하게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지금과 달리 아이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아이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 뜻일 테지만 왠지 서운하기도 한 양가적 감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