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공부가 필요한 이유
20대 초반 혹독한 마음의 사춘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어른들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으며 살아오던 시간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마주하는 삶의 힘든 사건들 앞에 배신 당한 것처럼 무너졌다.
조언을 구할 사람도 마음을 풀어놓을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스스로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점집을 가볼까?' 무서운데..
'병원을 가볼까?' 정신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그 당시는 정신건강이라는 단어가 쉽게 쓰이지 않던 때였고, 정신과 상담을 갔던 친구는
대기실에 앉아만 있다가 왔는데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을 보게 되면서 거울 치료를 하고 돌아온 이야기가 있을 만큼 진입 장벽이 높았다.
그럼에도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고 실행으로 옮긴 이유는 이 마음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내면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뭐든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 정보도 정확하지 않던 시절 검색만으로 마음이 가는 곳을 선택하여 홀리듯 방문하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지도를 보고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내 인생의 은인을 만나며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나는 이곳에서 개인 상담을 시작으로 심리 치유의 수업과 영적 성장을 위한 공부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영적 부모님과 같은 두 분의 가르침으로 인해 현재까지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마주하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들을 다져오게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오고 있는 현재는 ‘정신건강’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되었고, ‘명상’,‘치유’ 더 나아가 ‘영성’이라는 영역까지 사람들의 관심사는 넓고 깊어지고 있다.
처음 상담센터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지 않은지 의심했다. 가장 큰 의심의 시작은 부모님이었다. 온통 좋지 않은 눈초리들 뿐이었고, 마음공부나 내면아이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핀잔 얻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대단한 무언가를 깨닫기 위함이 아니었음에도 마음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잘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외적인 요소에서 오는 만족보다 내면의 만족과 성취감이 큰 사람이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현실의 어려움을 직면했더니 예상하지 못한 이유가 원인임을 알 수 있었고, 내 마음이 왜 이럴까?가 궁금했는데 그 안에 성장배경들이 보석처럼 숨어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궁금증과 해소의 희열을 따라서 가다보니 타인의 마음까지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신체 해부를 하듯 내 마음을 하나씩 뜯어 해석 하다보니 어려움을 풀고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내 마음 또 다른 말론 의식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 삶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비롯한 각종 정신건강에 빨간불을 켜놓은 채 앞만 보고 달리기에만 집중한다. 속도에만 집중하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달리는 내 몸 상태가 괜찮은지 또는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마음이 우선이다. 그러다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넘어진다. 몸이 다치게 되면 그제서야 마음을 살피게 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다친 마음 또한 "빨리" 해결하려는데만 집중한다.
병원이나 상담센터에 가서 몇 번의 상담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진단 받은 증상의 약으로 현실의 문제가 마법처럼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해결되지 않으면 외부 탓을 하고 여기저기 기관을 쇼핑하듯 다니게 된다.
그렇게해서 내가 마주한 마음의 힘듦과 현실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라는 오명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힘듦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큰 전환점은 그것들을 외적인 요인에서 찾기보다 내적인 요소에 있다는 전환부터가 시작이다. '명상', '마음챙김' 의 단어가 주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채 가부좌로 앉아서 하루 30분을 머릿 속 온갖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와 함께 앉아있으면 명상을 하고 삶이 변할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시간 안에서경험한 명상은 그렇지 않았다. 3시간도 앉아있어 보았고, 3일 넘게 단식을 하며 삶의 고민에 빠져보기도 했다.
나의 경우 키보드를 치는 이 순간 호흡에 집중하고 키보드 감각을 느끼며 글을 쓰는 순간이 명상이다.
명상은 행위가 아니라 본질에 머무는 것이다.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일단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지금 왜 기분이 나쁘지? 왜 자꾸 짜증이 나지?"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아야한다.
온갖 꼬여진 머릿속 생각들에 멈추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알아차림이다.
던져진 질문의 "왜" 라는 소리를 따라 답을 하다보면 답이 나온다.
답을 찾기 위한 내면의 생각, 느낌, 욕구들의 답이 내 삶을 변화를 줄 수 있는 열쇠들이다.
그 열쇠들로 하나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 괜찮아지는 부분을 만날 수가 있다.
그 괜찮아진 마음들로 현실을 살게 되면 내가 마주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쉽게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너는 깨달았니? 네 말이 맞니?'
맞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맞지도 않고 나는 깨달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말하는 마음 공부의 목적은 현실을 잘 살아내기 위함이고, 20년 간 철저히 나의 경험과 마음 공부를 함으로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부는 내가 생을 다 하는 날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우리는 누구나 현실을 잘 살고 싶으니까,
마음 공부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자.
시간을 많이 내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책을 읽고 많이 배워서도 아니며 대단한 무언가를 깨닫기 위함이 아닌 주어진 오늘을 잘 살고 내일의 행복을 위함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