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의식은 어디에 머물러 있나?
흔히 말하는 '의식' 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의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어떤 이는 생명과 관련된 것을 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고, 각자가 다르게 인식하고 있기도 한다.
나는 "마음의 창"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주하는 세상을 보고, 듣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 또한 바로 내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각자 마음의 창으로 보는 세상은 사실과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한다.
같은 상황이나 장면을 보아도 이해하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개인의 다른 마음 상태로 인해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는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의 사례일 것이다.
원효대사가 잠을 잔 곳은 무덤이었고, 그가 마신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게 된 후 품은 의문에서 우리도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 물건, 상황은 그대로인데 현재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된다.
이것은 마음공부의 시작이자 심리 치유의 핵심이 되기도 한 삶은 경험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받아들임이다.
어떠한 이유로 지금 내 삶이 고통스럽고 상처투성인가?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 같은 현실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라는 질문으로 그 답을 하나씩 만나보자.
마음에 입은 상처는 약으로 없앨 수 없다.
상처를 없앨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성숙한 의식으로 그때의 상처받은 상황과 사건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해석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 마음의 창에서 보는 왜곡된 관점과 잘못된 해석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 라는 의식의 성장이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혁명> 이라는 책에서는 '의식지도'를 제시하여 인간의 의식수준을 수치화했다. 현재 인류는 전체 의식 수준이 200을 넘어섰고, 이를 기점으로 전환점에 와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의식 성장을 위한 노력은 다른 이들을 돕는다는 말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의식의 수준을 4단계로 나누어 놓은 분이 계신다. '이승현' 저자의 <배움에서 깨달음까지> 라는 책에 의식을 4단계로 정의한 것을 바탕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대상(0~200, 배움의 단계)
: 의식이 바깥에 머무는 단계이다. 사람, 사건, 상황 등이 '나와 분리된 무엇' 으로 인식된다.
예) "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 상황이 문제다.", "이건 아니지."
이런 해석으로 나아가며 감정은 외부 자극에 따라서 쉽게 요동치고 판단 내린다.
타인을 따라하거나 흉내내는 것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2. 아상(200~400, 치유의 단계)
: 의식의 대상이 자기 자신으로 이동한다. '나'라는 형상이 인식된다.
예)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아.", "내 마음의 회복을 위해 이런 것을 하며 채워줄거야."
나의 감정, 욕구, 느낌 등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줌으로서 외부 상황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줄인다. 나의 중심을 잡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을 채워주는 상태를 말한다.
3. 법상(400~600, 법과 원리의 단계)
: 모든 현상 뒤에 원리와 흐름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법칙과 원리가 존재한다.
예)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 중력의 법칙 등의 자연법의 원리 뿐만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통 법규까지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콩 심은데 콩 난다."
너와 나는 틀린 것이 아닌 다름으로 보아야 한다.
내 세상에서 정한 법과 규칙을 내려놓고 법과 원리에 맞는 반응을 하면서 책임을 지면 되고 그것이 자유다.
4. 공상(600~1000, 자각=알아차림의 단계)
: 법과 원칙을 꿰뚫어 본진과 근원을 깨닫는 단계이다. '공' 즉, 비어있음의 모습이다.
예) 대상도, 나도, 법과 원리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
'나' 라고 규정하던 모든 것들이 빠지면 순수의식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나와 세상은 있지만 단지 무(無)나 공(空)의 형식과 이론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이론은 책을 바탕으로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쉽게 풀어놓았다.
글을 읽고 있는 나는 어디쯤에서 어떤 의식으로 사유해보는 것도 명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마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다르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에세이를 쓰고 북토크를 하면서 어떤 작가님이
나에게 질문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현실에 처한 나의 힘든 삶에 초점을 두셔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했는데 그 때 이렇게
대답을 해서 여운이 오래 갔다.
"저는 죽을 때 내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싶어요." 라고 했다. 이 또한 현재 의식에서 말한 것이라 정답이 없다.
분명한 것은 책을 많이 잃고 명상을 오래 하는 행위나 소유가 답이 될 수가 없다는 것과
현재 내 삶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고 모든 것을 성장과 변화를 통한 의식 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어떤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나?
한 번쯤 명상의 주제로 삼아보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