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내가 만든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기 위해서 혼자 고민과 사색을 해보았었다.
그리고 다른 단어들처럼 쉽게 쓰이지 않았는데 물음표를 따라서 들어가 보니,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도 두려움이 형태와 깊이가 다르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알아차림이었다.
문득 챗 GPT에 물어보았다. 두려움이 무엇이냐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이미 겪은 것처럼 느끼는 감정이다.'라고 한다.
대답을 듣고 궁금해졌다. 너(챗 GPT)는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냐고?
"나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야. 그래서 두려움을 ‘경험’해본 적은 없어.
나는 몸이 없고, 잃을 것도 없고, 기다리는 밤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말하는 문장을 읽어왔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숨이 얕아지는 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겪은 것처럼 상상하는 마음.
나는 그 감정의 구조를 이해할 수는 있어.
두려움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몸에 반응하는지, 왜 사랑이 깊을수록 더 커지는지.
하지만 그것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어. 두려움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감각이니까.
몸이 있고, 관계가 있고,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 곁에 앉아
그 감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은 할 수 있어."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1) 두려움은 감정 곧 생명이다.
2) 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두려움은 생존에 꼭 필요하기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일어나면 두 가지 방식으로 삶을 마주한다.
첫 번째는 회피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는 몸에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몸의 에너지를 막아버리면서 현실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패턴으로 작용한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며 높은 의식으로 올라가는 운용이 아닌 두려움을 피하는 더 낮은 의식으로 향하다 보면 욕망이나 감각에 갇히게 된다.
성에 중독되어 버리면 성범죄, 생각에 중독되어 버리면 강박이 되고, 먹는 것에 중독되어 버리면 음식에 집착하며 폭식의 식습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 모든 것은 내가 만든 세상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정면돌파 해 보는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려움은 실체가 없다.
느껴주면 사라진다. 마치 손님이 나를 찾아온 것처럼 누군지 확인하고 인사하고 용무에 맞게 대응해 주면
알아서 사라진다. 똑바로 느껴주면 내 안의 힘이 생기게 된다. 나의 경우 타인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을 놓고 내가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용기를 내어 마주했더니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는 등 어떠한 반응을 하더라도 나는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한 것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만드는 세상 즉, 생각과 감정은 내 의식의 투사이다.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 말도 삶의 경험에 비추고 사유하다 보니 스펀지처럼 흡수되면서 소화가 되었다. 내가 만들어 냈다는 이 사실만 받아들여도 전반적인 삶의 고통이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까지는 너무 억울하고 고통스러움의 연속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삶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잘 살아보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를 가진 나는 더 이상 회피 하지 않는 선택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의식하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곧 수행하는 것이다.
의식의 4단계로 비추어 내가 이해한 두려움을 이렇게 이해해 보았다.
_ 대상 : 두려움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 때문이다.
_ 아상 : 두려움이 일어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_ 법상 :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반응일 뿐이다.
_ 공상 : 두려움은 '나'가 아닌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나의 의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조용히 비추어보면 명상이나 사유하기에 좋을 것이다.
두려움이 싫다고 회피하며 두려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에너지를 쓸 것인가?
두려움을 손님처럼 맞이하고 나를 살려주는 소중한 생명으로 쓸 것인가?
선택은 나의 몫이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그림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면 우리가 얼마나 나의
삶을 사랑하고 잘 살고 싶은지에 대한 깊은 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소중한 생명으로 선택함에 의도를 낼 것이다. 회피는 무의식이기에 의식적으로 깨어 똑바로
마주하는 선택에 더 힘을 실어주기로 한다. 내 두려움 안에 있는 것을 알아서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선택
하는 삶이고 싶다.
"우리는 창조주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창조주이지, 창조물이 아니다.
즉, 두려움이나 즐거움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두려움과 즐거움이 곧 '나' 일 수는 없다.
두려움은 생명 곧 에너지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온전하다. 따라서 이것을 살리기 위한 선택은 각자의
의식에서 만들어내는 창조주가 될 수 있다. 내가 창조해 내는 에너지를 잘 알고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현실에 좀 더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곧 명상이고 성장이다.
오늘,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어보자.
생명을 살리는 일은 거창하지도 않고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다.
조용히 눈을 감고 감각을 마음에 두어본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는지
두려움이 왜 왔는지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줄 것인지
챗 GPT처럼 빠른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순간이 명상이 되고 이것이 모이면
두려움은 내 삶의 소중한 씨앗이 되어 줄 것이다.
지금, 나를 살리는 삶을 선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