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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ICA Jul 13. 2020

15,000피트 하늘에서 점프

킬다 비치에서 스카이다이빙을(2017)

나는 대부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지체 없이 해버리고 마는 성향이라(먹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먹는 것에 가장 자주 적용되어온 그 성향), 두고두고 마음에 품고 있는 하고 싶거나 갖고 싶거나 하는 것이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선 당장 하기 힘든 몇 가지에 대한 로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 원탑이던 ‘스카이다이빙’을 굳이. 꼭. 마흔 도착 전 해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 삼십 대 끝자락이 되자마자 적당한 여행지 검색에 도입했다. 경험상 열흘에서 2주 정도의 여행 기간이 적절하기에 그만큼의 휴가 제출이 가능한 시기를 고르고, 그 시기에 스카이다이빙이 가능할 곳으로 좁혀 나갔다. 마침 당시에 커피 계의 핫플 오브 핫플로 떠올라있던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이 겸사겸사 여러 사항을 충족할 수 있을 것 같기에 그해 초가을 9월 말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했다.


멜버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찍은 몽실몽실 구름밭


동행인과 일정을 맞춰 3-5월 중에 비행기 티켓과 에어비앤비, 스카이다이빙 예약까지 모두 완료했다. 동행인(이하 M)은 그때까지 5년 정도 나의 여행 메이트 역할을 충실히 해주던 사회에서 만난 두 살 어린 친구였는데, 영어권 나라에서 중고대학교를 다니고 온 친구라 여행 메이트로 꽤 훌륭했다.

그런데, 모든 예약을 맞춘 그해 5월부터 M에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이 있을 때 뭔가 불안해 보이고 휴대폰을 쉴 새 없이 보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자꾸 사소한 거짓말을 하거나, 특정 요일에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냐 몇 차례 물어봤지만 털어놓을 생각이 전혀 없는 답을 내놓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려고만 했다. 사는 동네가 멀어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긴 하지만 꽤 가깝게 지내온 사이인데,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와중에 무슨 일인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적잖이 걱정되고 신경이 쓰였다. 여행 출발을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어느 여름날, M을 포함 몇 년 전 함께 뉴욕 여행을 다녀온 K와 함께 세명이 이태원 루프탑에서 만났다. M과 K는 며칠 전 다른 일로 만났다고 하는데, 그간 사연이 무엇이었는지 K를 통해 알게 되었다. M은 네트워크 마케팅이란 단어로 포장되어 있는 속칭 다단계에 빠진 것이었다. 당시 일을 하고 있지 않은 K를 포섭하기 위해 며칠 전, 그 회사 일행을 끌고 K집에 쳐들어 갔다 왔다고 한다. (K는 믿고 지내던 언니 M의 이야기에 초반에 호응을 해주다가 이런저런 정보를 확인하고 금세 정신을 차렸다.)

아마도 M은 따뜻함으로 뭉쳐 보이는 그 회사의 사람들의 끈끈함에 그만 무너져버린 듯 보였다.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를 유독 질색하는 나여서 쉽게 털어놓지 못한 것인지, 추후 K에게 들은 것처럼 그 회사의 교육 내용(처음 반년 동안은 되도록 주변에 이 회사에 몸담은 것을 알리지 말고 회사 제품이 좋다는 정보만 흘리라는 것)이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M은 나에게 관련한 내용을 일절 말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K를 통해 들은 M의 사정은 적잖이 충격이었고 성격이 못돼 먹은 나는 당장 멜버른 여행을 취소하고 싶어 졌지만, 긴 시간 우정을 감정적으로 날리기는 너무 아쉬워 여행 중에 다시 한번 그녀에게 기회를 줘야지 마음을 먹고 (스카이다이빙을 생각하며 꾹) 여행 전까지 마음을 다스렸다.


멜버른은 내가 생각해온 오스트레일리아와는 사뭇 달랐다. 도시의 풍경, 살고 있는 사람들, 날씨까지도. 도착한 첫날 구경한 시내에 실망을 하고, 이후 그나마 마음에 드는 시장(Queen Victoria Market)과 마트(Woolworths)에서 쇼핑한 먹거리를 잔뜩 쟁여 숙소(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방 2, 욕실 2로 이뤄진 아파트는 마음에 들었다. 휴우.)에서 타 여행에 비해 비교적 긴 시간을 보냈다.



이쁜데 맛도 좋은 빅토리아 비터


커피의 도시에 왔으니, 1일 2 카페는 찍어야 해서 낮시간은 주로 카페 투어에 썼다.

커피맛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대부분 수준급. 넓은 카페보다 대부분 작고 아담한 커피집들이 었는데, 가게 앞에서부터 환상적인 커피 향을 뿜어대며 커피 애호가를 즐겁게 해 줬다. 기똥찬 커피를 마시는 순간들이 점묘법으로 찍히며 서서히 이번 여행에 만족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멜버른 카페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 Seven Seeds Coffee Roasters


멜버른 시티를 벗어나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d)로 향하는 아침, 마침 날씨도 끝내줘서 특별한 하늘의 아름다움을 만났다. 신이 존재한다면 드러누워 꿀잠을 잤을 것 같은 거대하고 통통한 구름이 초록 초록한 녹지와 함께 맞물려 이어졌다.


절벽뒤에서 둘리엄마 같은 공룡이 등장할 것만 같아 자꾸 눈이 갔다


멋들어진 절벽과 함께 나타난 해안선은 코너 한 개만 돌면 공룡이 살고 있을 것처럼 생경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절벽은 현실감각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마주하고 있는 내 몸은 점차 바람에 흔들릴 듯 가볍게 느껴졌다. 눈, 코, 귀, 손바닥, 발바닥까지 이 곳의 느낌이 스며들었다. 한참 동안 서있던 해안가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곳이 아니었다면 머릿속에 쉬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포토뷰로 이동하여 사진을 한 장 박긴 박아야 했는데 명소의 핫 스폿답게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바람이 몹시 거세어서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하체에 힘을 바짝 주고서야 간신히 찰칵. 역광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곳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엔 충분했다.


그야말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절경이었고, 장관이었다.


양 옆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다시 시내로 돌아와 카페와 마트와 식당을 당기고 쇼핑을 조금씩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카페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몇 번쯤 M에게 이야기를 나눌 의지를 표현해봤지만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여행 내내 휴대폰의 노예가 된 듯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M을 보다 보니 나의 의지 역시 결국 시들해져 갔다.   


그리고,

대망의 스카이다이빙 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맑고 밝다! 날씨 영향이 큰 스카이다이빙 첫출발이 좋다는 것에 안심을 하며, 세인트 킬다 비치로 향했다. 시내에서 40분 정도 달려 시내보다 훨씬 좋은 킬다에 도착했다. 스카이다이빙 신청 내역을 확인하고, 몸무게(파트너 다이버가 몸무게로 배정되는 것 같았다) 포함 간단한 신상 정보를 기재하고, 동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대기장소로 이동하여 커피를 마시고 잠시 있자니, 에너지가 들끓는 다이버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신나고 긴장해도 멈추지 않는 내 손가락의 V질&나를 달래주는 다이버 오빠


다이버가 각자 함께할 상대의 이름을 부르면, 그때부터 오늘 하늘에서의 짝꿍이 되는 것이다. 내 짝꿍은 다이버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던 활력 넘치고 화려한 오빠(나이랑 무관한 호칭인 거 알죠?)로 당시 똑단발이던 나보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다. 통성명을 하고 안전수칙, 랜딩 자세 등을 자세히 알려준다. 다이빙 복장으로 환복하고 미니버스에 올라 장소 이동을 하는 중에도 짝꿍 다이버 오빠는 쉬지 않고 나를 얼르고 달래주며 긴장을 풀어준다. 경비행기 앞에 도착해서야 신이 나기만 하던 마음이 살짝 쫄리기 시작.


나를 하늘에서 떨궈줄 비행기를 타고 계속해서 나를 달래주는 다이버 오빠의 재롱을 즐기며 하늘로 향했다.

드디어 15000피트 상공에 도착. 비행기 문이 열리니 바람과 함께 정신없음이 쏟아져버린다.

어버버버버버하는데 첫 번째 주자가 사라졌다.

어이쿠야, 그냥 가네.

아 맞다 내가 두 번째지 하는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내 몸은 비행기 문에 도착해 하늘을 마주하고 있었다.


'손가락 V병' 치료 가능한 병원을 찾습니다



옴마야, 옴마야 하는데 쓰리! 투! 원!

응?!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하늘에서 땅으로 미친 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귀에 통증이 몰리며 구름 사이를 통과하며 곤두박질치고 있는 찰나

이제 나 죽나?! 하는데, 다이버 오빠가 낙하산을 당기란다.

아 맞다 나한테 낙하산이 있었지, 읏쨔!

낙하산을 당기자 땅으로 떨어지던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로 솟아버렸고, 순간 나는 이것이 혹시 출산의 고통인가 싶은 요추와 골반에 통증이 느껴졌는데...


바다와 하늘의 수평이 맞춰지며 상하의 속도가 사라지며, 나는 그야말로 하늘 한가운데 동동 떠있었다.



내가 뛰어내린 15000피트 상공, 킬다 비치



아 이거구나 이거야 이거!!!!!
해냈다


하늘에 동동 떠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하늘은 내 짧은 표현력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때의 기분 역시 그저 황홀했다고 말할 수밖에. 아드레날린에 색이 있었다면, 그때 내 몸은 온통 그 색깔로 변해있었을 텐데. 랜딩을 안전하게 마치고 낙하산을 떼어내고 나서야 다시 귀의 통증이 느껴지며 쪼랩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각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인터뷰에 나선 짝꿍 오빠



프로 다이버 오빠는 이제 막 정신을 차릴까 말까 하는 나에게 영어로 질문 세례를 퍼부었지만 나는 한국어로 답했다는 것, 정신없는 인터뷰를 꽤 길게 하고, 다이버 오빠랑 격렬한 포옹을 하고 헤어진 것 모두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나중에 영상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래서 스카이다이빙 할 땐 꼭 영상을 찍으라 하는 것이 었나 보다.


태어나 처음 맛본 환상적인 기분도 미처 이기지 못한 허기짐을 킬다 비치 노상 식당에 들어가 맥주와 음식으로 달래주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찾아들었다.


스카이다이빙 완료 후 먹는 한상, 저거 미니 햄버거예요.. 그래서 두 개인 거예요..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었던 스카이다이빙을 마치고, 하루 그리고 반나절을 보낸 뒤 끝나는 여행 일정. 돌아오는 비행시간까지 50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에서 M과의 내일은 굳어져버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각자 집을 향하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나는 M에게 그간의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을 함께해줘서 고마웠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 카톡과 함께 당분간 M과의 손절이 시작되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이곳에 기록하지 못한 다른 에피소드들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바로 다음날, 제주도로 향했다. 나의 쌩쌩한 체력에 감탄하며, 아쉬운 인연의 정리와 함께 한국의 가을 날씨를 즐기기에 제주도는 완벽했다. 섭지코지를 걸으며 날씨를 만끽하고 잠시  말도 탔다. 쾌청한 가을날, 높은 말 등에 올라 제주 하늘 가까이에서 풀밭을 지나는 기분이 꽤나 근사했다.


삼십 대의 마지막 가을.

내가 이뤄낸 것, 놓친 것, 놓아버린 것들이 쌓여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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