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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Dec 27. 2016

알바생을 보다가 문득

"목표를 보고 뛰는 걸까, 아니면 무작정 뛰고 보는 걸까."

 카페에서 우연히 구부정한 자세로 글을 쓰고 있는 알바생을 보았다. 앞에는 주문을 받는 카운터가 있었고, 그 옆에는 투명한 유리창 내에 조각 케이크와 베이글이 있는 진열대가 있었다. 그 뒤에 커피머신과 싱크대가 위치해 있었는데, 그 높이가 딱 커피를 만들기 좋은 정도였다. 그 덕분에 책을 펼치고 필사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아주 불편한 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인사를 해서 그녀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받고 주문을 받는 그녀에게 풋풋한 활기가 느껴졌다. 사회의 물을 너무 빨리 마신 탓인지,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커피를 한잔 주문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다양한 친구, 선배, 후배가 있다. 특성화고교를 나온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그들은 다양하게 진로를 정했다. 단순한 고졸 백수인 나부터 시작해서 삼성 무선사업부에 다니는 친구, 은행에서 일하는 친구, 대학교에서 부사관 공부를 하는 친구,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한국으로 대학원을 갈려던 친구, 군대 갔다가 말뚝 박은 친구. 그런 친구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적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 벌기'용으로 대학교를 간 이들이다. '대학 가서 생각해보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주장은 나쁘지 않다. 그런데 대학의 기나긴 시간 동안 여전히 제자리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못난 것이 아니라,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없어서 그렇다. 그들은 '러닝머신'위를 열심히 뛰고 있을 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경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간혹 자신만만한 말을 내뱉지만, 종종 '이런 걸 하고 말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열심히'라는 단어는 러닝머신의 속력을 잠시 높이는 것에 그친다. 분명히 건강하고 힘 있는 육체를 얻지만, 그 튼실한 몸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쓰고 싶은지를 모른다. 사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대학생 중에서 자취방, 등록금, 식비 등 모든 것을 스스로 충당하는 사람도 있다. 조금은 부모님께 기대고, 손을 벌려도 되는 나이에 그는 '독립'하고 싶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또 어떤 학생은 기껏 좋은 대학교를 가고 나서 졸업 직전에 과가 적성에 안 맞다는 이유로, 자퇴를 하고 알바를 전전한다. 그런 그녀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충분히 인생을 즐기고 있으니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러닝머신 위를 뛰고 있는 것은 똑같다. 오히려 어떤 학생은 그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와 천천히 걸어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경우도 있다. 이것은 '시야'의 문제였다. 


우리가 뛰어야 하는 것은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환경이다. 마라톤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다양한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목표는 언제나 '완주'다. 이 길의 끝을 보는 것, 그렇게 뛰어가야 한다. 뛰면서 우리는 쓰러지는 사람을 보고, 뒤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본다. 길을 잃고 헤매거나, 다리를 다쳐서 절뚝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마라톤 위에서는 잠시 멈춰 쉴 수 있다. 반면, 러닝머신 위에서 쉬려다가는 뒤로 나가떨어진다. 빠르게 회전하는 기계의 틀에 벗어나게 된다면 넘어져서 다치고 만다.


나는 친구들이 마라톤을 뛰고 있는지, 러닝머신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깊게 이야기해보고, 몇 년 동안 지켜보지 않는다면 파악할 수 없다. 분명히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보다는 무작정 러닝머신만 뛰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걸 확신한다. 마라톤을 두려워하는, 도전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러닝머신을 뛰고 싶니, 마라톤을 뛰고 싶니?"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하던 그 알바생은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분명히 마라톤 코스 위에 서 있고, 몸을 풀면서 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만일, 러닝머신 위에서 그렇게 뛰고 있다면 그냥 콘센트를 뽑아버리겠다.

러닝머신 위의 속력을 못 이기고 지쳐서 뒤로 나가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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