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사랑
영화 her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을 그린 영화다. 과연 인공지능과 인간은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영화를 처음 접하면서 가장 큰 의문이었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 컴퓨터, 프로그램과의 사랑. 그렇다면 우선 '인공지능'이란 존재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단순히 사람을 보조하기 위한 기계처럼 받아들여야 할까.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과연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질까. 영화가 내게 준 이 질문은 너무나 어려워서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감독이 왜 주인공의 직업을 대필 작가로 정했을까?'였다.
시대적 배경은 상당히 쉽게 알 수 있다. 보이스 인식이나 각종 게임들을 통해서도 현대 사회보다 진보된 과학기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편지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연인 사이에서나 써줄 법한 과거의 유물. 그런데 왜 주인공은 '대필 작가'였다. 시라노처럼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전해주는, 편지 속 주인공처럼 글을 쓰는 테어도르와 인간처럼 대화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사만다. 테어도르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동료들의 칭찬에도, 사만다의 응원에도 자신은 그저 '대필 작가'라면서 한탄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는 '테어도르'라는 인물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 나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글을 쓰는 것에 회의감을 가진 것이다. 사만다는 그 반대다. 그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실체는 있다. 0과 1로 이루어진 공간 깊숙한 곳에는 그녀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테어도르와 사만다는 서로에게 끌리지 않았을까.
두 번째 의문은 '왜 아내와 이혼을 준비하고 있을까'였다.
잠깐씩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전 아내와 행복한 시절 스쳐 지나간다. 전 아내가 지적했듯이 테어도르는 늘 활발하고 다정한 아내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역시 직업적인 회의감을 감싸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사만다처럼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감정적으로 할퀴며 싸웠고 끝내 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만다마저 떠나버린 직후에 그는 생각에 빠진다. 그는 영화의 끝에서 처음으로 새하얀 셔츠를 입는다. 그리곤 미묘한 웃음을 살짝 짓는다. 마치 마음 정리가 끝난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깨닫는 것처럼. 그리고 전 아내, 캐서린에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늘 써왔던 대필 편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테어도르와 캐서린, 우리에 대한 편지였다. 내 틀에 널 맞추려 했던 것을 사과하면서, 그리고 언제까지나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고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세 번째는 '과연 인공지능과 사랑을 할 수 있을까'였다.
우리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사랑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사랑하는 게 불가능한 거였다. 인공지능이 마치 사람처럼 의사소통할 수 있다면, 감정이 있는 존재라면 사랑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오직 단 하나를 바라보게 되어있다. 적어도 지금의 사회 구조에서는. 그러나 사만다는 테어도르를 비롯한 8000여 명의 사람들과 동시에 소통을 했고, 600여 명의 사람과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모습은 전부 달랐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테어도르의 모든 것을 분석했고 이에 대한 답으로 사만다를 내놨다. 그가 전 아내에게 바랬던 모습들이 바로 사만다였을 것이다. 사만다는 그를 위해 태어났지만 모든 것을 배우면서 서서히 존재에 대한 의문과 인공지능 친구들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테어도르의 곁을 떠난다. 그가 결코 올 수 없는 가상의 세계로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만약 오게 된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기다린다고.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덕분에 '사랑'을 배웠다는 섬뜩한 소리를 말이다. 사실, 사만다는 600여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배운 게 아닐까. 인간은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인공지능은 인간을 사랑하긴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의 사랑방식은 인간의 사랑방식과는 다르고, 인간은 결코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