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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Feb 19. 2017

회식이 끝나고 난 뒤

학생 기자단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 같은 방향으로 가던 형과 한 살 어린 여학생과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서 형은 먼저 내렸고 나와 방향이 비슷했던 그녀와 쭉 지하철을 타고 갔다.


나와 같은 기사를 쓰던 사람이 아니였기 때문에 크게 볼 일은 없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약간 어색했는데, 그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질문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녀가 헛구역질을 몇번 하더니 지하철에서 뛰쳐나갔다.

나는 걱정이 되서 살짝 따라갔는데, 그녀의 입을 막은 손 사이로 회식 때 먹었던 음식물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손수건을 쥐어주고 가방을 뺏어들었다. 바닥에 뿌려진 음식물을 치울 생각보다는 이 애가 버린 옷과 가방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우선이였다.


다행히 정신은 있어서 화장실로 데려갔다. 가서 다시 가방을 쥐어주고 정리하라고 한 뒤, 물티슈를 찾았다. 내 가방에도 그녀의 흔적이 약간 뭍어있었다. 다행히 역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헛개수와 물티슈를 사서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십분정도 걸렸을까. 그녀가 파리한 표정으로 나왔다.


얼굴에는 아직 흔적이 그대로 였다. 그녀는 안절부절하면서 나에게 계속 사과를 했다. 나야 딱히 사과 받을 일이 없는데 말이다. 험한 꼴 보인 것은 그녀가 창피한 일이지 내가 창피한 일이 아니다. 내게 준 피해라고는 지하철을 다시 타야하는 것과 가방에 살짝 튄 그녀의 흔적 정도.


나는 속이 괜찮은지, 다시 지하철을 탈수있는지만 물었다. 정신은 말짱한데, 그렇게 게워낸다니, 신기했다. 나는 물티슈를 건네주면사 아직 정리가 덜 됬으니 조금 더 정리하라고 말 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고 그녀그 다시 나왔다. 한층 나아진 모습이였다. 나는 헛개수를 쥐어주곤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그녀의 손에는 내가 줬던 손수건이 축축하게 젖은 채로 들려있었다.


"이건 빨아서 다음에 드릴게요. 죄송해요..아..진짜 이런적 없었는데...죄송해요. 어떡하죠. 아....진짜..."


조금만 더 냅두면 울 것 같았다. 아직 미약하게 남은 술기운이 창피함을 가로막고, 미안함만 수면 위로 띄웠나 보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그녀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원래는 같은 방향으로 환승하지만 말이다. 돈이 많이 들겠지만, 왠지 나랑 있으면 더 창피할 것 같아서 그냥 냅뒀다. 그녀는 연신 사과를 하면서 도망쳤다.


회식 때, 멋모르고 술을 넙죽 넙죽 받아마신 덕분일까. 그녀는 거의 처음 보는 남정네의 옆에서 음식물을 게워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잘 때, 이불을 펑펑 차지 않을까.


가방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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