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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Nov 27. 2018

안녕,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본건, 우연히 틀었던 TV 채널에서였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나온 그는 굉장히 특이했다. 지저분하게 보이는 덥수룩한 머리에 듬성듬성 난 콧수염이 그를 늙어 보이게 했다. 알고 보니 꽤 젊었다.     

그의 겉모습처럼 괴상한 미미 시스터즈와 함께 흐느적거리면서 ‘달이 차오른다, 가자’고 노래하던 장기하. 그때부터 호기심이 시작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상케 하던 그들의 이름은 ‘장기하와 얼굴들’. 심지어 별명도 인디계의 서태지였다. 궁금해서 들어본 그의 첫 앨범은 축 처지면서도 중독성 있었고, 씁쓸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 같았다.


가장 좋아했던 건, ‘정말로 없었는지’였다. 나는 장기하가 쓰는 가사가 좋았다. 직설적이진 않지만, 어렴풋이 그려지는 그 상황과 심정이 끌렸다. 독특하게 흘러가는 멜로디는 은근한 중독성이 있었고, 괴상하게 보이던 그의 모습까지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서울대 출신이라고 하니 더욱 있어 보였다.


MP3에 그의 노래가 하나, 둘씩 늘어갈 무렵, 친구가 같이 콘서트에 가보자고 했다. 수능이 끝나고 처음으로 ‘콘서트’를 갔다. 태어나서 가수의 콘서트를 가는 건 그게 처음이었다. 그때 봤던 장기하는 콧수염도 없고, 헤어스타일도 단정했다. 깔끔한 외모와 흥겨운 분위기가 기억난다. 마지막에 불렀던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후렴구를 소리쳐 부르다가 목이 쉴 뻔했다.


그 이후로도 누군가의 콘서트를 가본 적은 없었다. 허클베리 피의 공연, 분신을 보고는 싶었지만,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없어서, 예매가 힘들어서 관뒀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뒤로도 무한도전을 비롯한 예능과 음악 프로에 나오면서 승승장구했다. 나는 그의 노래가 나오면 들었고, 방송이 나오면 찾아봤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끈덕지게 쫓아다니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본방을 사수하진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밴드, 가수,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아주 독특한 장르를 가진 밴드. 그가 낸 노래들은 한동안 찾아서 듣다가, 한동안 잊어서 살다가, 뜬금없이 한곡 들으면 다시 한동안 찾게 되는 그런 노래였다.


그러던 중,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콘서트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노래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신기한 건, 그 노래를 들었던 순간들도 함께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들었던 ‘내 사람’, 소개받았다가 대차게 까이고 들었던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그 순간들이 스쳐갔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왜 해체한다고 하는 걸까. 내 청소년기의 일부분이었는데. 나는 장기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지금이 적기인 것 같아서, 그는 여기까지가 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 앨범을 들려줬다. '아니, 앞으로도 더 좋은 앨범 낼 수 있을 거예요!‘라고 외치는 우리에게 ’ 그건 네 생각이고 ‘ 말하며, ’ 해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애원하는 팬들에게 ’ 거절할 거야 ‘라고 노래한다.


‘장기하와 얼굴들’에게 커다란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장기하를 좋아하지만, 팬심이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좋아하던 음악이었고, 독특함에 웃음이 나오던 가사였다. 그런 노래를 이젠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아쉬움이 가득했다.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제 마지막 활동을 하고 다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장기하는 과연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음악을 들려줄까. 나는 그가 ‘취미’ 삼아서라도 종종 음악을 들려줬으면 좋겠다.


왜냐면,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너는 만들어주고, 나는 들어주는 그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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