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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Jul 21. 2019

패배의 짠맛

패배는 쓴 맛이 아니라 짠맛이었다.

1.

흔히 패배를 쓴 맛에 비유하곤 한다. 보통 약처럼 쓰지만 몸에 좋기 때문에 그럴까. 오늘 느낀 패배는 쓰기보다는 짜디 짠, 바닷물 맛이었다. 친구들과 서핑하러 가기로 예약한 당일, 태풍 다나스가 한국으로 상륙했다. 태풍으로 거칠어진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 서핑 교육을 받고 바다로 나가자 거대한 파도가 우리를 휩쓸었다. 파도를 온몸으로 맞아보니,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게임에 '파도타기'라는 공격 기술이 있는데, 대미지가 상당히 높았던 게 기억났다. 그건, 사실이었다.


파도는 꽤나 높았다. 덕분에 파도를 타기는 굉장히 어려웠고, 파도를 타기 위해 앞바다로 나가기까지도 너무 힘들었다. 나갈만하면 휩쓸려 밀려갔고, 휩쓸려나가면 강풍에 서핑 보드가 밀려나갔다. 우리는 파도에게 패배했다. 파도를 잡아 타려다가, 휩쓸리고, 떠밀리고, 파묻혔다. 파도가 한번 밀려올 마다, 눈코 입엔 바닷물이 들이찼고, 짠맛이 느껴졌다.


얼굴에서 온갖 분비물이 뿜어져 나왔고, 우리는 바다에서 나왔다. 우리의 패배는 쓴 맛이 아니라, 짠맛이었다. 짠맛은 쓴 맛과는 다르게, 입안에 계속 짭조름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 우리를 괴롭혔다. 침을 뱉고, 또 뱉어도 폐와 위 속에 들이 찬, 파도의 짠 물은 우리의 패배를 상기시켜줬다.


강원도 양양의 서핑 비치에서 우리는 패배의 짠맛을 봤다. 쓴 맛은 입속을 넘어가면서 슬며시 느껴지고, 서서히 퍼진다면, 짠맛은 입에 닿자마자 느껴지면서 강렬하게 자기주장을 보여주며 입 속을 헤집어 놓는다. 짠맛은 입에서 계속 맴돌았고, 패배감과 함께 우리의 기분을 바닷속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2.

영화이자, 소설인 '초속 5cm'에서 한 소녀가 나온다. 파도타기에 성공하면 자신이 짝사랑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한 소녀가. 그녀는 아침부터 바다에 나가서 파도와 기나긴 줄다리기를 시도한다. 파도의 위에서 올라서겠다는 그녀의 집념을 보면서 나는 파도타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궁금했다.


그 영화는 서핑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줬다. 나는 유럽 여행에서 처음 서핑을 배웠고, 그때는 보드 위에서 설 수는 있었다. 비교적 잔잔한 바다였으니까. 하지만 파도 위에서 설 수는 없었다. 그건 또 다른 세상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변한다. 파도를 잡아서, 올라타려면 파도를 기다려야 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태풍의 여파로 바다는 거칠었고, 파도는 더 심하게 날뛰었다. 그 파도에 맞아 뒹굴기도 하고, 서핑 보드가 크게 튕기며 나를 해안가로 끌어당기기도 했다. 때로는 파도에게, 때로는 서핑 보드에게 얻어 맞고 뒹굴수록 오기가 생겼다. 그러면서 또다시, 한 소녀가 생각났다. 아, 그녀가 왜 '고백'이라는 것을 파도타기로 결정하려고 했는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이란 것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감'을 얻기 마련이다. 그 자신감은 때로는 사람에게 독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평소라면 절대 못할 일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 소녀에겐 '고백'이 그랬다. 절대 못할 것 같은 그녀의 고백은 파도타기의 성공으로 그에게 전해진다.


양양의 서핑 비치에서 나는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이뤘고, 하나의 버킷 리스트를 추가했다. 서핑하는 것과 파도타기에 성공하는 것. 오기를 품고 무작정 파도에게 덤볐으나 패배했다. 올해, 혹은 내년에는 다시 한번 바다에 나가서 파도의 위에 서보고 싶다. 거칠게 날뛰는 파도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분위기와 썸은 못 탈지언정, 파도 하나 정도는 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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