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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Aug 29. 2019

예술이 실종된, '멋진 신세계'

[예술이 실종된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가 발표된 1932년, 헉슬리는 우리의 미래를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시험관에서 태어날 것이라 예언했고, 우리의 사회가 철저한 계층 사회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예술은 극도로 통제된 일부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며, 그 대상으로 ‘영화’를 지목했다.       

   

 세계 평화가 도래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는 시대. 멋진 신세계에서는 계급이 구분되어 있었다. 불만이 없는 계급 사회에서 주인공들이 즐기는 예술은 오로지 하나였다. ‘촉감 영화’. 촉감 영화는 마치 영화 속 인물이 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신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야만인 ‘존’은 촉감 영화를 처음 접하고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왜 촉감 영화만 남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통제관의 발언에서 유추할 수 있다. 통제관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행복은 대가를 치러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자네들은 지금 그런 대가를 치르고 있어왓슨자네는 아름다움에 너무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지.”          


 그들의 유토피아엔 대가가 필요했다. 신세계의 주민들은 전쟁 대신 평화를 얻었으며, 가난과 질병 대신 건강과 부유함을 얻었다. 그 대가로 그들은 다양한 것을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름다움’이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림, 클래식 음악, 소설, 연극, 뮤지컬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 소설, 수필 또한 마찬가지다. 포드를 찬양하는 노래와 자극적인 촉감 영화만 등장할 뿐이다. 고급 예술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감정의 교류는 신세계의 주민들에게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통제관은 낡은 책들을 금고 속에 넣어둔다. 글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선율은 가둬졌고 잊혔다. 야만인 존과 그의 친구 왓슨은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면서 깨닫는다. ‘소마’란 약의 문제점을 말이다.          


 반 그램의 소마는 신세계 주민들에게 생각의 흐름을 놓고 의식을 흐리게 만드는 일종의 마약이다. 그 마약은 예술의 가장 큰 대체제가 되었다. 주민들은 즐거움을 위해서 소마를 먹고 헤롱헤롱 거리며 살아간다. 가장 효율적인 통제 수단이자 대체 수단으로써, 주민들에게 마약이 배포되는 것이다. 소마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는다.     

 그렇다면 멋진 신세계 속에서 예술은 정말 실종되었을까. 왓슨은 통제관에 의해서 섬으로 보내진다. 일종의 유배지와 같은 곳이지만, 자아의식이 강해, 사회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내지는 곳이다. 통제관은 그를 유배지로 보내며 말한다.           


조금이라도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이지난 자네들이 부러울 지경이라네왓슨”       

   

 멋진 신세계에서는 집단의 안정을 위해 고급 예술을 대가로 치렀다. 하지만 고급 예술을 갈망하는 사람들 혹은 집단의 안정에 파문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잘 조작된 유전자에서도 돌연변이는 탄생하는 법이니까. 결국 유배지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온갖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실종된 고급 예술,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그림과 음악 그리고 소설은 그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통제관이 왓슨을 부러워 한 이유는 또 다른 ‘멋진 신세계’가 그 섬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행복을 원한다. 그리고 헉슬리가 보여주는 ‘멋진 신세계’는 거의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버나드 마르크스와 레니나, 왓슨, 그리고 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신세계의 주민들이 가진 행복은 아기와도 같다. 단순한 욕구 발생과 해소를 거치는 아기. 버나드는 이렇게 말한다.       

   

일하는 시간 동안에만그리고 지적으로만 어른이죠. 감정과 욕망에 있어서는 아기들이지만요.”          

 멋진 신세계에서 실종된 예술을 보라. 예술이란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승화시킨 작품이자,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창작물이다. 헉슬리가 써 내려간 멋진 신세계가 우리의 눈에 멋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가진 행복이 실종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예술을 대가로 내놓을만한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이 다가왔을 때 생각보다 섬으로 도망칠 사람은 많을 것이다. 예술만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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