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지금이야말로 그걸 증명할 때야."
전에 그것을 1천 번 증명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다시 증명해야 한다.
매번 새로운 때였고, 그것을 입증할 때면 과거는 생각하지 않았다.
-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물고기와 겨루며 보냈던 노인은 생각한다. 오늘 또한 증명의 시간이라고. 헤밍웨이를 알고 책을 읽는 것과 모르고 읽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책 속의 노인은 곧 예술가를 의미한다. 예술가는 헤밍웨이, 그 자신이다.
헤밍웨이는 평생을 마초적인 남자로 살아왔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고 복싱과 사냥을 즐겼다. 그리고 글을 썼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밑거름 삼아서 써 내려간 작품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다. 성공이라는 압박감은 그를 내리눌렀다. 실패는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성공과 실패의 교차로 속에서 그는 눌리고 밟혔던 그는 결국 총을 들어 스스로를 겨눈다.
헤밍웨이는 노인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노인은 과거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를 낚았는지는 상관없다고 되뇐다. 헤밍웨이도 그랬다. 새로운 글을 써야 했고 과거가 어땠던 그는 스스로를 다시 한번 증명해야 했다. 작가에는 새로운 작품이 곧 그 자신이 된다. 실패한 작품은 그를 실패자로 만들었고 성공한 작품은 한순간뿐인 영광만 안겨줬다.
노인은 마침내 거대한 청새치의 옆구리에 작살을 박아 넣는다. 그러나 오랜 항해 끝에 항구로 돌아온 노인의 청새치는 앙상한 뼈만 남았다. 집에 돌아온 노인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노인을 따르던 소년은 그를 위해 다음 낚시를 준비한다.
헤밍웨이는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엔 늘 허무한 결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노인과 바다'에서는 다음을 암시한다. 하룻낮과 하룻밤의 사투 끝에 낚아 올린 청새치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그가 청새치를 낚아 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번 이뤄낸 사람은 그다음 또한 이뤄낼 수 있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그 속에 녹아들어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어준다.
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삶은 증명의 연속이라도, 그 끝에는 앙상한 뼈다귀만 남았을지라도, 우리가 이뤄낸 무언가는 결국 우리에게 남아 다음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노벨문학상과 풀리처 상을 받는다. 어쩌면 그 상들이 그에겐 앙상하게 뼈만 남은 청새치와 같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그는 죽음을 택한다. 그에겐 한번 더 항해를 떠날 힘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써 내려간 작품들은 우리에게 남아있다. 불멸의 고전 문학이 되어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작은 로스터리를 열었다. 잘 될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