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자의 넋두리

소개팅 시장에는 왜 남성이 더 많이 나올까.

by 글도둑

새로운 누군가를 소개받고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다. 그 만남을 계기로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며 호감이 점차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다. 언젠가 내가 소개받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또 소개받았으며 그 사람과 잘 만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진이 나아, 아니면 직접 본 게 나아?”


잘 되고 싶었던 나는 사진도 예뻤지만 직접 만나서 보니까 더 예쁘다고 답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보통은 다들 실물이 낫다고 하더라. 특히 이런 자리에서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가 소개팅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 느껴졌다. 그녀와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는 길, 그녀는 ‘다음번에는 내가 살게.’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다음 날엔 정반대의 연락이 왔다. 밥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프티콘과 좋은 사람 만나라는 장문의 카톡이 말이다.


추측컨대, 그녀는 이미 여러 번의 소개팅을 했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나였으며 나는 다른 상대보다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내가 소개를 받아본 횟수를 떠올렸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3번의 소개를 받았다. 아주 드물게 성사되는 일이었다. 주변에 소개팅 시켜달라는 남자들은 넘쳐났으나 여자들은 매우 드물었다. 내가 봤을 때는 여자는 소개팅을 많이 받고 다양한 남자들을 만난 뒤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있었다. 반면 남자는 소개를 받더라도 성공률이 낮았다. 나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소개팅 시장에 대한 성비 문제로 돌리고 싶었다. 왜 소개팅 시장에서는 남자가 더 많을까.


소개팅 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할까. 통계학적으로 따지자면 그렇지 않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내가 태어난 90년대는 남성보다 여성의 인구가 훨씬 적다. 성비가 평균 110대에 이를 정도로 남성이 더 많이 태어났으니 당연히 소개팅 시장에서도 남성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비의 측면에서 우선 100명 중 10명의 남성은 자신 또래의 여성을 만날 수 없다. 여성이 양다리를 걸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소개팅 시장엔 여성이 너무 적게 느껴진다. 여성 또한 외롭고 연애를 원한다면 분명 소개팅 시장에서 여성 비율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 주변엔 소개를 받길 원하는 여자는 매우 적고 남자는 많은 편이었다. 성비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외로움을 더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여자가 그런 자리를 싫어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더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걸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던 끝에 하나의 가설이 나왔다. 남자에겐 스킨십의 결핍이 있다는 가설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스킨십을 나누면서 산다. 적어도 유치원생까지는 풍부한 애정 표현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받게 된다. 눈빛, 말, 그리고 스킨십. 우리의 어린 시절엔 가족들과 친척들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스킨십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때로는 뽀뽀로, 때로는 포옹으로. 그런데 남자는 어느 순간 머리가 굵어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스킨십을 피하기 시작한다. 애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하며 뽀뽀해달라는 부모님의 입술을 피하고 손을 잡으려는 손길을 피하기 시작한다.


남자도 어릴 적엔 스킨십이 잦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표현을 멈추고 필요를 애써 무시하기 시작한다. 이런 결핍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첫 연애와 그 이후다. 사랑받는 느낌을 깨닫게 된 남자는 스킨십의 노예가 된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스킨십의 결핍을 채우게 된다. 성인 전후의 나이에 처음 받아보는 적나라한 애정 표현과 스킨십은 남자를 노예로 만든다. 그리고 늘 그렇듯 연애 위엔 이별이 따라온다. 이별 이후 우리는 극심한 결핍에 시달린다. 남자든 여자든 결핍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자는 친구와 가족에게 어느 정도의 애정 표현과 스킨십을 주고받으며 결핍이 해소되는 반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이성애자의 기준에서 남자가 다른 동성 친구와 할 수 있는 스킨십이 뭐가 있을까. 술에 취한 채 어깨동무 정도? 이마저도 길거리에서 보기 어렵다. 손을 잡는다거나 포옹을 해주는 것은 매우 드물다. 남자들의 스킨십이란 애정 가득한 표현 대신 홧김에 내지르는 주먹질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여성이 친구와 가족에게 편하게 애정 표현과 스킨십을 주고받는다.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걸어가거나 포옹 또는 뽀뽀까지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스킨십은 가장 쉽고 빠르게 사랑을 표현하고 느끼게 한다. 이성애자인 남자가 동성과 할 수 있는 스킨십이 주먹다짐과 어깨동무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면 여자가 동성과 할 수 있는 스킨십은 팔짱과 뽀뽀 그 언저리로 보인다. 받는 애정 표현을 수치화한다면 남자는 학생 때부터 0에서 2 정도의 표현 속에 산다면, 여자는 3에서 5 정도의 표현 속에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스킨십 결핍의 차이가 남자를 소개팅 시장으로 이끌게 된다. 여자보다 남자의 결핍이 심하니까 소개팅 시장엔 남자가 더 많이 나오게 되면서 경쟁률이 올라간다. 그러니 나의 소개팅 실패는 다름 아닌 스킨십의 결핍으로 인한 경쟁률 상승이 원인이라는 기나긴 변명되시겠다.


이런 실패자의 넋두리가 그럴듯한 헛소리로 들렸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의 실패가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는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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