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
- 부서장과 담당 임원에게 결재를 받자, 더 이상 거리낄게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도 더 이상 없었다. 인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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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관련 면담요청(건)]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퇴사 관련해서 아래와 같이 면담요청을 드리오니, 회신 바랍니다.
1. 시간 : 11월 15(화) 오후 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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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내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메신저가 하나 도착해있었다. 관련 서류를 준비해서 오라는 것과 출발 시, 미리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서류는 거의 다 준비되었다. 이제는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5.
주말에는 독서모임을 한다. 하나는 부산에서, 하나는 거제도에서. 원래는 부산까지 가기 귀찮아서 거제도에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없었다. 독서모임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거제도에서 하나 만들었다. 사람이 모이는 기간에는 부산의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덕분에 상당히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이번 토요일은 부산 독서모임이었다. 옥포에서 사상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서 눈을 붙였다. 퇴사에 대한 생각이 넘실넘실 밀려들었다. 그 생각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보통 부산에 가면 그냥 하루 자고 온다. 그게 더 편하기도 하고 거제도에 돌아가기 싫어서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은 게스트 하우스를 하나 잡아놓곤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저녁에 약속이 있다. 모임에서 독특한 형님을 한 분 만났었다.
"주변에 쓰레기 같은 친구밖에 없어서 독서모임 나오고 있습니다."
그는 독서모임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똑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면서 말이다.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하게도 혼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독서모임이 끝나고 그 형님과 술을 한잔 할 예정이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면 어떤지.
이번에 선정된 책은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었다. 특히 각자의 '연애관'에 대해서 말이다. 모임이 끝나면 늘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우리는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해운대 근처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가방을 던져놓고 다시 형님과 만났다. 해운대 역 인근 술집으로 들어갔다.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꽤나 유명한 집이었다. 일본어로 쓰인 간판을 읽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술집은 꽤나 독특했는데, 가운데에는 각종 어묵류와 유부주머니가 펄펄 끓고 있었고 사람들이 바쁘게 안주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매진이라고 해서 어묵탕에 소주를 시켰다. 부산은 '시원'이었다.
"그래서 고민 상담이 뭐고?"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퇴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 제가 책을 읽는 게 좋고, 글을 쓰는 게 좋더라고요. 군대에서 하루 종일 책만 읽은 적이 있어요. 그때, 병영도서관은 군생활의 도피처이자 휴식처였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하루 종일 공부를 할 수 없어도, 하루 종일 게임은 할 수 없어도, 내가 하루 종일 책은 읽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지금까지 왔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서모임에 활동하고. 제가 가끔 말했었잖아요. 28살 때, 북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그리고 그곳에서 책 읽고 글 쓰면서 살고 싶어요. 사실, 다른 사업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쨍. 소주잔이 부딪치고 목을 타고 술이 넘어갔다. 이상하게도 술이 금방 올랐다. 알싸하게 올라오는 취기와 알코올 향이 내 숨결에서 느껴졌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형님, 근데 형은 지금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즐기면서요. 그래서 형에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형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는 어묵을 하나 들어서 우물거렸다.
"글쎄다, 내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못 듣지. 하하.... 그래, 나는 개처럼 살았어. 사고도 많이 쳤고,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혔고. 그러다가 옆집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더라. 니 그럴 거면 고철상이나 한번 해보라고. 그래서 시작한 게 이 사업이야. 대학교 휴학하고 근처에 꽤 큰 고철상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지. 진짜 힘들었어.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일을 제대로 안 알려주려고 해. 특히 나처럼 대학교 나온 사람에게는 더더 욱. 그래서 몰래 어깨 너머로 배웠어. "
그 형님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고 내 잔도 채웠다. 그의 과거를 더듬어보면서 말이다.
"참 치사하고 더러워서 실력을 키웠지. 고철상도 이런저런 일이 많아. 녹도 벗기려면 작업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 나는 대학도 나와서 서류 업무도 같이 봤거든. 그러니까 거기 있던 사람들도 인정해주고 그랬지. 뭐. 근데 신기한 게 그 일이 치사하고 더러워도 나랑 맞더라. 그 할아버지가 나를 잘 본거지. 그래서 자본금 오천만 원으로 덜컥 내 고철상을 시작한 거야. 거기에 중소기업지원 같은 것도 많이 받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여기까지 온 거고. 그러면서 경기 안 좋아지니까 신용거래하다가 망할 뻔도 하고 그랬지. 그래서 칼 들고 그 사람 집까지 찾아간 적도 있어."
파산. 내 생각대로 잘 안되면 파산일 거다. 북카페에서 제대로 수익이 내지 못한다면, 내 글이 팔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건배를 하고 술을 한잔 더 마셨다. 그 사이 우리 앞에는
"형은 그 일이 언제 좋다고 느꼈어요?"
"나? 그게 일을 하다 보면 웃통 벗고 그라인더로 녹을 쫙 벗길 때가 있어. 그럼 아드레날린도 팍팍 돌고, 땀도 쫙 빠지고 기분이 좋더라고. 그러면서 깔끔해진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해. 그걸 잘 팔면 돈이 되니까 주머니도 가득 차니까 나에겐 딱 맞던데."
"형에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할 필요는 없겠네요."
그는 어묵탕에 있던 유부 주머니를 하나 덜어서 나에게 줬다. 허연 김이 펄펄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뭔데."
"행복하시냐고요. 근데 이미 충분히 행복해 보이시네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게 너무나 좋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 뒤로도 형이 일본에서 유람선 선원으로 일했던 이야기와 내 사업 아이템, 그리고 북카페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다. 다시 역 근처로 돌아가서 인사를 나눴다.
"헤어질 때는 말없이! 알지?"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제 갈길을 갔다. 딱 그 형님 스타일대로 마시고 헤어졌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나도 내가 잡았던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해외에서 한번 살아보면서 글을 제대로 써보자. 그리고 돌아와서 한번 출판사나 찔러보자. 문득 회사를, 거제도를, 한국을 떠나고 싶어 졌다, 나답게 살고 싶어 졌다.
이런저런 사업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다. 북카페를 차리고 글을 쓰거나, 글을 쓰면서 북카페를 차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