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고무장갑과 3M 장갑

by 글도둑

내가 일하는 곳은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수리한다. 그중에서 내가 하는 업무는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머신에 있는 호스와 전원코드를 분리한다. 엔지니어가 외관을 분리하고 내부를 세척하면 내가 외관에 있는 커피 찌든 때를 제거한다. 고무장갑과 3M 장갑을 번갈아서 끼면서.


제거한다는 말이 세척한다는 말보다 어울린다. 커피 찌든 때는 생각보다 잘 눌어붙어있다. 의아할지도 모르지만 커피 원두에도 지방 성분이 있다. 보통 강하게 로스팅된 커피 원두는 번들거리는 표면이 보인다. 그게 바로 커피 오일이다. 이 오일 성분이 바로 내가 높은 시급을 받게 하는 주범이다.


기름 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퐁퐁을 듬뿍 묻힌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다 못해 긁어내는 수준이다. 원두를 담는 통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가장 귀찮은 부분은 커피 퍽이 담기는 통과 그 연결된 부위다. 커피 찌꺼기가 말라 붙어있는데 아주 독특한 냄새가 올라온다. 커피라고 해서 늘 좋은 향만 나는 건 아니다. 특히 아주 오래된 커피 찌꺼기는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럴 때는 마스크를 늘 들고 다니게 해 준 코로나가 반갑기도 하다.


세척을 하다가 가장 힘든 것은 손가락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을 닦아야 한다는 점이다. 칫솔 같은 솔질로 해보지면 썩 개운하지 않다. 그리저리 해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린 뒤, 남은 찌꺼기들은 만능 클리너로 다시 한번 닦아낸다. 구석에 닿는 도구를 이용해서.


내부의 찌든 때를 벗겨내면 이제 외부를 닦을 차례다. 내부가 커피 찌든 때와의 싸움이라면 외부는 테이프와의 싸움이다. 외부에는 스카치테이프나 시럽이 튄 자국, 커피가 튄 자국이 들러붙어있다. 시럽이나 커피는 참 손쉽게 정리된다. 그러나 테이프를 뜯다가 보면 결국 자국이 남는다. 아주 독한 오렌지 향이 나는 스티커 제거제를 듬뿍 뿌려주고 기다렸다가 껌 칼 같은 걸로 밀어내야 한다.


일은 어렵지 않다. 다만 귀찮고 더러운 일 투성이다. 그러나 예전에 일했던 다른 일보다는 훨씬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카페 일과는 다르게 새롭게 외우고 배워야 하는 게 적다.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없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심지어 카페보다 시급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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