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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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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Jan 19. 2022

카페거리 너머에, 바난

아주 작은 규모의 매장이다. 들어가면 큰 테이블 하나와 작은 테이블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큰 테이블엔 의자도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를 내리시는 사장님을 보면서 맛에 진심이라는 걸 느꼈다. 작은 가게를 둘러보니 입구에는 유럽에서 받은 듯한 증명서가 걸려있었다. 두 장의 증명서가 같은 내용인데 다른 글씨체로 걸어 놓으신 듯했다.


달라코르테, 안 핌 그라인더 두대, 코만단테 핸드밀이 보였다. 코만단테는 전동 킷을 통해서 자동으로 분쇄되고 있었다. 이런 장비만 해도 돈 천만 원 나가지 않았을까. 창업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장비에 대한 눈만 높아진 걸 느꼈다. 작은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가 꿀처럼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아이스를 주문했다. '에티오피아 사카스 모모라 워시드'라는 이름의 원두. 메뉴판에 적힌 노트에는 감귤, 라임, 초콜릿 등이 있었다. 웬만한 로스터리나 스페셜티 커피라는 단어를 간판에 써놓는 곳보다 더 전문적이다. 맛 또한 그랬다. 톡 쏘는 산미가 올라오면서 밝은 단 맛이 뒤따라왔다. 이 정도가 사장님 생각엔 라임 정도의 신 맛이구나. 나는 레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감귤 같은 느낌보다는 오렌지 같은 밝은 단 맛. 끝 부분에 살짝 쌉싸름한 뉘앙스가 풍겼다. 그래서 초콜릿이 노트에 있나 보다. 다크 초코의 씁쓸한 느낌보단 옅다. 아주 살짝만 느껴져서 맛 자체는 깔끔하게 느껴졌다.



산미가 강한 커피를 좋아하진 않지만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라서 한 잔 다 마시고 나왔다. 산미 톤을 살짝 줄이고 단 맛을 조금 더 올린다면 더 편하게 마실 수 있지 않을까. 맛을 전반적으로 감귤에 초점을 맞추면서 감귤 초콜릿이라고 포장해도 좋을 듯싶다. 매장이 너무 작고 한적한 아파트 편에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보정동 카페거리에 자주 갔는데 여긴 그 너머에 위치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이 있는 듯했다. 너무나 깨끗한 매장을 보면 오픈한 지 오래되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단골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커피를 마시다가 원두를 사러 온 고객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가족도 여기 자주 와서 마신다고. 매장이 너무 작고 조용해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 들릴 것 같았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잘 들리기도 했고. 테이크 아웃 전문점으로 만든 매장 같았다. 창가에 작은 바 테이블이라도 있으면 더 여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손님이 있는 가게와 없는 가게는 분위기가 정말 다르니까, 적은 인원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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