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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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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Feb 19. 2022

어쩌다 보니, 구스 커피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자그마치 모현읍 오산리까지 와서 커피를 마셨다. 원래는 중고 주방용품점에 갈 예정이었다. 업소용 냉장고와 핫 워터 디스펜서를 구경하고 가능하면 사려고 말이다. 오후 6시까지 영업한다는 자동응답기와는 다르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전화해서 물어보니 오늘 일이 있어서 일찍 퇴근했다고.


주변을 창고 같은 건물에 들어선 회사와 저 멀리 언덕에 지어진 주택만 보였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근처 카페를 찾아봤다.  역시나 카페는 있다. 어딜 가나, 어디서나 카페는 존재한다. 근처에 꽤 여러 곳의 카페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로스팅과 핸드 드립이라고 써놓은 곳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걸어서 도착한 곳이 구스 커피였다.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앉아있는데 사장님이 오셔서 말을 걸었다.


"드립으로 드릴까요?"


초롱초롱한 눈빛. 얼떨결에 네, 대답하고서 무슨 원두냐고 여쭤봤다. 만델링으로 준다길래 냉큼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5,500원 결제했는데 8,000원짜리 드립을 주신다는데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번엔 아메리카노 후기가 아니라 드립 커피 후기다. 커피를 기다리면서 카페를 둘러봤다. 우드톤 가구와 색채가 가득했다. 우드톤으로 통일한 인테리어와 푹신한 의자가 마음에 든다. 편안한 분위기와 아늑한 느낌을 준다. 동네 주민들의 아지트가 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커피 공부도 열심히 하셨는지 한편에 커피 관련 책이 꽂혀있었다. 창밖엔 'since 2008'이라고 붙어있었다.



사장님이 가져다주신 드립 커피는 가볍게 로스팅했다고 한다. 향미를 살리고 싶으셨다고. 그래서 만델링 같지 않다. 내가 경험했던 만델링은 무겁고 견과류의 고소함이 느껴진 커피였다. 예전에 강하게 로스팅했을 땐 살짝 시나몬 같은 느낌도 났었다. 이곳의 만델링은 정반대였다. 가벼운 바디감과 선명하게 올라오는 신 맛. 미약한 고소한 맛과 단 맛이 스친다. 균형이 잡혀있어 괜찮았다.


안쪽을 보니 태환 프로스터가 보였다. 칠판에는 스페셜티 커피의 종류와 점수가 적혀있었다. 80점 이상을 세폐셜티 커피라고 지칭하곤 한다. 로스팅도 하고 드립도 하고 디저트도 하시는 듯하다. 혼자서 하시는 건 아니겠지? 혼자서 하려면 정말 아침부터 준비해야 할 텐데.


언젠가 지나갈 일이 있다면 한번 더 와서 꼭 아메리카노를 마셔보고 싶다. 근데 올 일이 있을까 싶다. 너무 멀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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