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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y 02. 2022

40,500 + 55,000

생두를 사고 볶아서 커피 원두를 판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사업이다. 그러나 그 사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려면 통신 판매업이라는 신고가 하나 더 필요하다. 게다가 단순한 사업이 식품 제조업이 되는 순간, 품질 검사를 받아야 한다. 먹는 거에 장난치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통신 판매업을 위해서 신고하는데 4만 원, 자가품질검사를 위탁하는 수수료가 5만 원이 들었다. 커피의 경우 3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외에도 작업실용 노트북, 로스팅을 위한 각종 장비를 구매하면서 돈을 펑펑 썼다. 20살부터 지금껏 모아 온 자금이 반토막 났다. 텅 비어 가는 통장 잔고와 반비례하듯 작업실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와서 구경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갔다. '뭐 필요한 거 없어?'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행거, 저울, 전동 드릴, 물티슈, 테이블 등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택배들이 도착했다. 친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커피를 한잔 내려주는 것과 커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게 전부였다. 고맙고 감사했다.


내가 성공해서 이 은혜를 갚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커피를 볶는다. 로스터의 드럼이 돌아가고 생두가 드럼 속에서 떴다가 내려앉는다. 초록빛이 돌던 것이 점차 노랗게 변하가더니 어느새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 원두가 되어간다. 구수한 커피 향과 함께 빙글빙글 돈다. 이 작업실을 유지하려면 최소 50만 원의 이익을 내야 한다. 대략 한 달에 100kg를 볶아서 팔아야 한다. 100kg를 한 달, 20일 기준으로 쪼개면 5kg. 하루에 5kg씩은 볶아서 팔아야 한다. 그럼 적어도 이 작업실은 지킬 수 있다. 월세가 오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그렇게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친구들에게 받은 은혜가 떠오른다.  은혜, 갚을수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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