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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May 04. 2022

1,800

드립백을 만들어서 팔려는 가장 큰 이유는 편의성이었다. 주변에 커피를 좋아해서 그라인더와 드립 세트를 가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물론, 커피라는 취미를 진득하게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내 주변엔 별로 없었다. 그런 지인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드립백은 필요했다.


드립백은 현재 두 종류가 있다. 대부분의 드립백은 종이필터로 감싸서 종이로 다리를 만들어 컵 위에 고정하는 형식이다. 또 다른 드립백은 융드립처럼 생겼다. 원형의 종이 가운데 종이필터가 움푹 파여있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페도라 같다고 해서 페도라 드립백이라고 불린다. 나는 페도라 드립백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예전에 만들어 본 적 있으니까. 그리고 이게 더 편리하니까.


처음엔 예전에 일했던 매장처럼 진공포장을 할까 고민했다. 일반적으로 밀봉하는 것보다 진공포장은 산소와의 접촉을 더 줄일 수 있다. 그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문제는 내가 구매한 가정용 진공포장기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진공포장비닐은 두꺼워야 했고 비쌌다. 한 장에 100원짜리 진공포장비닐. 반면 더 얇은 포장비닐은 장 당 28원이었다. 우선 진공포장과 일반 포장의 맛의 차이를 비교해보려고 준비했다.


분쇄된 원두를 넣고 하나는 진공 포장, 하나는 일반 포장을 해뒀다. 과연 그 둘의 맛 차이가 얼마나 날까. 농도 테스트도 해보고 싶지만 그런 장비를 하나 사는데 15만 원이다. 그건 나중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 사기로 했다. 어쩌면 못 살지도 모른다. 일단 혀에만 의존한다.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문제는 내 혓바닥을 믿을 수 있는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적어도 한 명은 더 필요했다. 차이를 느끼는지, 차이가 있다면 유의미한 차이인지 확인해줄 사람. 친구들을 불러서 시음을 시켜보고 반응에 확신을 얻었다.


그다음엔 비닐 포장의 사이즈였다. 진공포장 비닐에만 꽂혀있던 중, 작고 반투명한 쿠키 포장 비닐을 발견했다. 심지어 사이즈도 딱 맞고 예뻤으며 가격도 4원이나 저렴했다. 미리 주문했던 포장비닐을 반품 신청하고 새로운 비닐을 주문했다. 원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드립백 하나 당 원가와 판매가를 계산했다. 1,800원. 12g의 원두가 들어간 드립백 하나에 1,800원이다. 이걸 팔아서 월세를 내려면 600개는 팔아야 한다. 한 달에 600개. 월세는 알바비로 내자.


http://naver.me/5vMhTZ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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