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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Apr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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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걱정이었던 부분이 여실히 그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불행히도 나에겐 덕트 공사가 그랬다. 인테리어 컨설팅을 받았을 때도, 그리고 덕트 공사 업체를 만났을 때도 다들 우려를 표했다. 우선 내 작업실이 지하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덕트가 빠져나갈 경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주차장 측 외벽을 따라서 가는 방법이었다.


그다음 고민은 어디까지 올릴지였다. 컨설팅 업체는 주차장 밖으로만 빼도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1층까지만 뺀다면 한 150만 원 정도 들 거라면서. 커피를 볶는 작업은 생각보다 냄새와 연기가 발생한다. 나는 혹시 모를 민원을 생각해서 옥상까지 빼고 싶었다. 건물이 5층이니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꽤 길었다. 덕트 업체는 300만 원 넘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고 도착한 견적서에는 370만 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열심히 철거하고 페인트 칠해서 아껴둔 자본금이 뭉텅 뜯겨나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외벽을 타고 옥상까지 덕트 작업하려면 로프 맨이나 고소차가 필요했다. 덕트 업체는 커피 로스팅 전문이라고 되어있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덕트 공사를 하면서 불안요소는 2가지였다. 첫 번째, 배관이 타고 나갈 경로가 애매하다는 점. 두 번째, 하더라도 위로 향하는 게 아니라 누워서 지나가면 안에 찌꺼기가 쌓일 수 있다는 점. 그래도 이미 상가 계약을 했고 진행을 한다면 370만 원이 들 것 같다고 했다.


견적서를 보고 나서 이게 맞나 싶었다. 공사비용이 많이 드는 이유는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며 작업을 해야 하는 점이 가장 컸다. 그리고 중간중간 쌓인 찌꺼기를 청소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야 해서 시간도 더 걸렸다. 문제는 이렇게 억지로 작업을 하더라도 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로스팅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잔뜩 써버린 매몰비용을 제외하고서 생각했다. 이왕 내친걸음,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공사는 시작했고 대금의 절반을 보냈다. 작업은 이틀이 걸렸고 주차장 입구를 따라서 은색의 덕트가 올라섰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옥상이 넓고 주변 건물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작업 환경이 좋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배기까지 해결되었다. 이제 각종 집기류만 갖춰지면 본격적인 로스팅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업체 사장님은 생각보다 공사 과정이 무난하게 풀렸다고 했다. 최대한 대각선으로 덕트를 빼내면서 찌꺼기가 쌓이지 않도록 설계했고 예상보다 배기가 잘 될 것 같다고. 작업 기간 이틀을 제외하고 로스터가 도착하면 추가로 손을 봐주신다고 했다. 내가 계약해서 진행했던 업체 중에서 가장 깔끔하게 청소도 하고 가셨다. 언젠가 다시 덕트를 할 일이 있으면 이쪽에 다시 연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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