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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Jun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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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 원두의 출시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시고 볶고, 또 마시고 또 볶는 연속 끝에 제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디카페인 드립백도 많은 사랑 바랍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blackmarlin


디카페인 생두를 본 적 있는가. 디카페인 생두는 새까맣다. 애초부터 카페인이 없는 커피체리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 생두에서 카페인을 빼내는 가공법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왜 카페인 없는 커피체리가 없냐면, 아직 우리는 카페인이 왜, 어떤 이유로 커피나무에서 생성되는지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생성 요소를 제거한 커피나무를 만들어낼 리가 만무하다.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내가 구매한 멕시코 디카페인은 마운틴 워터 프로세스였다. 빙하수를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이 생두는 아주 거뭇거뭇한 편이다. 냄새 또한 구수한 냄새가 나는 반면, 신선한 생두에서는 후추처럼 톡 쏘는 풋내가 난다. 마운틴 워터 또는 스위스 워터라고 불리는 이 가공법은 생두를 물에 넣어서 성분을 전부 추출한 다음 필터로 카페인만 걸러낸다. 그리고 다시 생두에 성분을 넣고 건조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로스팅할 때다. 보통 원두는 푸른빛이 도는 녹색이다. 열에 의해서 수분이 날아갈수록 노란색에 가까워진다. 그러다 1차 크랙이 터지며 미디엄 로스트로 갈수록 밝은 갈색빛을 띠다가 점차 짙게 변한다. 그러나 디카페인 생두는 이미 색이 어둡기 때문에 로스팅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색으로 알기 어렵다. 게다가 기존 생두와는 다른 가공법을 거치면서 밀도와 수분이 한번 바뀐 상태라 열이 잘 안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덕분에 맨 처음 로스팅한 디카페인 원두는 열을 과하게 먹었다. 짧은 시간에 열이 강하게 주입되면서 일부는 살짝 타버린 맛이 났다. 찌르는 듯한 산미와 쌉싸름한 게 아니라 텁텁한 한약재의 뉘앙스가 났다. 처음 맛을 봤을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디게싱 기간이 지나고 에스프레소로 마셨을 땐 놀랐다. 밤 같은 냄새가 나는 원두에서 찌르는 산미라니. 로스팅 프로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잡아서 볶았다. 이번에는 열을 줄이고 시간을 늘려서 더 천천히 익혀볼 생각이다.


다시 볶아서 마셔본 원두는 텁텁한 느낌이 줄고 쌉싸름한 맛과 밤 같은 향이 더 선명해졌다. 그래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맛 때문에 다크 로스팅까지 익혀볼 생각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끝내고 당당하게 팔 수 있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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