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청년과 해적

by 글도둑

검은 바다에서 죽음과 해적은 피할 수 없다던가. 청년은 해적왕과 마주쳤다. 해적왕은 1월과 7월, 그리고 5월에 항구에서 통행료를 걷어갔다. 대한민국 항구를 지배하고 있는 해적왕, 국세청은 1월과 7월에는 '부가가치세'라는 명목으로 통행료, 5월에는 '종합소득세'라는 요금을 걷어갔다. 청년은 바다에 나간 지 4개월 만에 마주한 장벽이었다.


해적왕이 요금을 계산하는 방법은 참 독특했다. 배 한 척 당 얼마가 아니라 배에 싣고 있는 물자에 맞춰서 계산했다. 심지어 그전에 얼마나 물고기를 낚아서 팔았는지, 낚싯바늘을 얼마나 샀는지 확인까지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충분히 조사해서 알 수 있지만 직접 실토하게 만들었다. 아주 귀찮고 복잡한 서류를 보여주면서 '직접' 입력하라고 강요했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면서.


청년은 암담했다. 아직 뭘 해보지도 못하는데 돈부터 내야 한다니. 그래도 해적에게 붙잡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을 기억하고 천천히 서류를 뜯어봤다. 그러면서 예전에 만났던 한 선박을 떠올렸다. 푸른색으로 늘씬하게 빠진 외제 선박을 타고 온 그는 마찬가지로 푸른빛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 선박의 부선장이 내 배 근처에 정박하더니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남바완 세무사의 남바 투입니다. 지난번에 오늘 방문한다고 전화드렸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청년은 자신의 배가 너무 작아서 안 보일 거라며 밖에 나가서 남 버투를 데려왔다. 그는 하늘하늘한 반팔 셔츠에 슬랙스, 로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자기네 선박에서 진행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셨다고 하셨죠? 우선 간단하게 저희가 하는 서비스와 요금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1월, 7월 부가세 신고 대행 서비스, 그리고 5월 종합 소득세 신고 대행 서비스가 있습니다. 부가세는 10만 원부터, 종소세는 20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기장 서비스가 있는데 이건 저희가 직접 재무제표를 매달 만들어드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자영업자분들은 한 달에 7만 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청년은 고분고분 설명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만, 우선 제가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지난달 매출은 30만 원 정도밖에 안돼서요. 기장 서비스를 이용하기엔 매출도 너무 적네요. 부가세 신고도 아직 규모가 작아서 크게 관리할 건 없어 보입니다. 우선 검토해보고 나중에 매출 더 올라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넵, 다른 세무사도 비교 한번 해보시고 연락 주세요. 아직 매출도 적고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 도움드리는 차원에서 6에 해드릴게요. 대신, 나중에 법인 세우게 되시면 그때 넉넉하게 수수료 책정해주시고요. 하하."


남 바투는 시원시원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요즘 많이 힘드시죠? 저도 최근에 투자해서 왕창 벌었다가 전부 잃었지 뭐예요. 하마터면 한강 갈뻔했는데 한강에 뛰어내려도 남는 게 얼마 없길래 그냥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청년은 그의 자랑 겸 푸념을 들어주고 커피 한잔과 함께 그를 배웅했었다. 청년이 남 바투가 떠올린 이유는 이 해적왕에게 요금을 덜 뜯기게, 그리고 귀찮지 않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남 바투에게도 돈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다음번엔 꼭 많이 낚아 올려서 남 바투를 고용하기로 결심하며 해적왕의 서류를 열심히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급가액, 세액, 영세율,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 종이 세금계산서 등 들어본 것 같지만 어떻게 숫자를 써야 할지 모르는 것들이 투성이었다. 청년은 머리를 쥐어짜면서 빈칸에 숫자를 채워 넣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그동안 미뤄났던 공부를 시작했다.


이 항구에서 모든 배는 해적왕에게 통행료를 뜯기고 있었다. 이제 막 배 타고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통행료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서는 무료로 통행료 서류 기입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대신,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은 자기네 걸 써야 했지만. 그 공간에 잔뜩 쌓인 자료를 보면서 청년은 하나씩 따라 해 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내 물고기 낚은 수를 조회하는지, 현금으로 팔았는지 카드로 팔았는지, 다른 선박에 납품하진 않았는지, 아니면 다른 선박에서 얼마나 사 왔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청년은 쓴 돈이 벌어들인 돈보다 많다는 것을 해적왕에게 증명했다.


해적왕은 그를 아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미리 걷어갔던 항구 이용료의 일부를 그의 앞에 던져주고 자리를 떠났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10만 원이 들어있었다. 청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부디 큼직한 물고기가 낚기길 기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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