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2시간이 넘도록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노를 저었다. 살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기분 속에서 청년은 커피 원두를 홍보하러 다녔다. 오늘 그가 노리는 곳은 커피뿐만 아니라 책과 맥주, 와인도 파는 독립서점이었다. 청년의 '블랙 말린'은 책에서 나왔으니 독립서점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업은 쉽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서 도작한 곳은 불이 꺼져있었다. 청년은 잠시 땀을 식히면서 공지를 찾아봤다. 요즘 들어서 SNS에서 공지를 확인해야 했다. 지도 어플에 등록되었다면 그곳에서도 한번, SNS에서도 한번.
- 긴급 공지, 금일 영업은 한 시간 늦춰서 시작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분명 4시에 출발할 때는 오픈 시간이 오후 6시였는데 어느새 또 다른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고작 두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저녁 시간에만 운영하는 독립서점이라 어쩔 수 없었다. 부업으로 하는 듯했다. 그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쉬고 메시지를 남겼다.
- 커피 원두 샘플 두고 갑니다. 타이밍을 잘못 잡았네요. 하하.
다시 돌아가는 길, 한여름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몸을 잔뜩 달궈줬다. 땀방울은 이마에서 콧잔등, 그리고 목덜미를 흩고 지나갔다. 찐득하면서 축축한 느낌이 온몸에 달라붙고 몸에서 짠내가 나기 시작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청년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영업을 잘할 수 있을까. 그는 영화가 떠올랐다. 금융의 거리에서 떠돌던 늑대에 대한 영화. 그쪽 바다에서는 악랄하기로 유명했던 사기꾼에 대한 영화.
"이 펜을 나에게 팔아봐."
늑대는 말했다. 그의 부하는 펜을 집고서 늑대에게 되물었다.
"냅킨에 서명 좀 해주시겠어요?"
"펜이 없는데?"
"여기 있어요."
"그래, 이게 바로 수요와 공급이지."
청년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의 현란한 혀놀림을 떠올렸다. 그처럼 영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멋들어진 말로 커피에 대해서 설명할 날이 올까. 커피 원두는 수요가 꽤 많다. 실제로 커피 시장은 커지고 있었다. 문제는 공급 또한 많다는 점이다. 영업은 단순히 수요과 공급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월가의 늑대는 수요가 매우 많은 것처럼 속여서 팔아치웠다. 현란한 혓바닥으로. 청년에겐 그만한 언변이 없었다. 사기를 치고 싶지도 않았으며 사기 칠 능력조차 없었다. 결국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했다. 수요가 있는 곳에 나를 알려야 했다.
작업실에 돌아온 청년은 원두를 곱게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얼음을 잔뜩 넣고 만든 시원한 아이스커피. 금세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이 퍼졌다.
"이걸 어떻게 팔아야 할까. 내 커피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거라면 향도 못 맡고, 맛도 못 보는데. 그렇다고 다른 곳처럼 원두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해봤자 소용없지 않을까."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검은 액체를 연료 삼아 머리는 열심히 굴러갔다.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1번. 카페나 에스프레소 바를 열고 시음할 공간을 만든다. 이건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해. 이미 늦기도 했고. 당장 이 월세를 감당하기 위한 알바를 관두면 더 큰일 날 수도 있어. 여기 공간 자체는 애초에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잖아. 게다가 내가 유명한 바리스타도 아니니까 맛이나 인지도로 승부하기도 어렵고. 우선 대회를 나가보면서 실력을 더 쌓고 생각해볼 문제야.
그럼 2번, SNS 광고. 광고비를 감당할 수 있고 그걸 메울 매출이 발생한다면 1번보다는 나을지도 모르지. 어디에 광고를 할지가 고민인데. 일단 낮은 금액으로 시도는 한번 해보자. 적은 광고비라도 효율적으로 쓴다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청년은 2번을 선택했다. 우선 광고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온라인 광고를 알아보면서 청년은 그동안 공부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요와 공급이 온라인을 통해서 이뤄진다면 그는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공부를 했어야 한다. 청년은 그동안 커피 공부에만 집중했다. 커피의 맛이 결국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은 커피의 맛은 두 번째 단계였다. 일단 마셔보기 전까지 커피의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팔아야 했다. 팔고 고객이 직접 마셔야 했다. 재구매를 결정할 때 비로소 맛에 대한 중요성이 생겼다. 판매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게 첫 번째였다. 검색 상위권에 노출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청년은 다시 방향을 틀었다.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착실히 하고 있는 커피 공부 외에도 마케팅과 온라인 스토어에 대한 공부가 추가됐다. 다행히 청년의 불안감은 줄어들었다. 할 일이 생기니 불안을 느낄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의 사업이 자리 잡는데 일 년 정도가 걸릴 거라 예상했다. 그전까지 매출이 작더라도 서서히 올라가기만 하면 계획은 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