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슈마엘이라 불러다오."
경쟁사 탐방을 위해 도착한 서울에서 청년은 그 문장이 떠올랐다. 그곳엔 거대한 빌딩 사이로 카페가 가득했다. 청년의 눈엔 고래 같았다. 백경, 선박과 선원을 집어삼키는 모비딕. 거대한 자본이 건물 한 채 전부를 카페로 만들었다. 예쁘면서 웅장한 인테리어와 값비싼 커피머신이 보였다. 화려한 디저트와 반짝거리는 유리잔에 눈이 부셨다.
청년은 이슈마엘이 아니었고 에이헤브는 더더욱 아니었다. 어쩌면 스타벅일지도 모른다. 모비딕 사이에서 존재감 없이 스쳐 지나가는 조연.
"아니지, 스타벅은 그래도 브랜드 이름이라도 남겼잖아. 난 그보다 못할지도 몰라."
청년은 중얼거리면서 걸었다. 고래들 사이에 끼어있는 새우들도 보였다. 아주 허름하고 작은 공간에 입간판을 세워놓고 커피를 팔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껌이나 신문을 팔던 아주 작은 자리였다. 그 앞을 천천히 걸어가니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는 사장이 보였다. 손님이 올 거라고 기대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심심하고 무료한 얼굴. 어쩌면 그저 시간을 낚고 있을지도 몰랐다. 허름한 골목 사이에도 카페가 하나씩 들어차 있었다. 청년은 저런 곳에 원두 납품이 가능할까 싶었다. 이미 고래 같은 로스터리들이 영업을 뛰지 않았을까? 그에겐 고래를 상대할 방법이 있어야 했다.
청년은 검은 바다에서 많은 고래를 마주했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녀석들. 저걸 낚아 올린다고 치더라도 되려 그의 배가 뒤집힐 것이다. 청년은 원두 납품보다는 원두 소매와 드립백 소매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카페에 납품할 능력이 부족했다. 요즘 들어서 로스팅을 하는 곳은 에스프레소 머신 업체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규모가 컸다. 서울의 카페쇼에서 만난 업체는 커피 원두 납품과 동시에 커피 머신 정비도 같이 해줬다. 청년이 이길 수 없는 조건이다. 반면, 커피 원두의 맛을 따지는 카페는 당연히 대회 우승 경력도 있고 유명한 로스터리의 원두를 사용했다. 이래나, 저래나 청년의 커피 원두를 받아줄 곳은 많지 않았다.
목이 말랐던 청년은 깔끔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좁지만 2층까지 있는 카페였다.
"여기는 노트북 사용이 안되고 콘센트도 따로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바리스타의 안내에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커피 한잔 시키고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보였다. 경쟁자를 상대하려면 더 저렴한 값에 더 많이 팔아야 하니 어쩌면 이런 방법이 필수적일지도 몰랐다. 이런 방법으로 회전율을 높이는 게 과연 의미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음료는 드시고 가시는 거죠? 자리로 가져다 드릴게요."
아주 좁은 2층 계단은 꽤 위험해 보였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 쓴 게 보였다. 자리에 앉자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금방 나왔다. 괜찮았다. 맛있다고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불만도 갖기 어려웠다. 2층에서는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좁지만 창문이 나있고 예약석이 분리되어 넓어 보였다. 청년은 이 카페에 원두를 납품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당장 원두를 가져오진 않았지만 샘플을 보내볼까 싶었다.
이 카페가 얼마나 되었을까.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창업한 지 꽤 된 곳이었다. 오래된 거래처를 끊기 어려우리라. 청년은 단가와 맛, 그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했다. 커피 맛이 바뀌는 걸 감수할 만큼 단가가 경쟁력 있는지, 맛이 더 뛰어난지. 원두를 바꾼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커피가 들어가는 모든 음료의 맛에 영향을 끼치니까. 고민 끝에 청년은 샘플 보내려던 생각을 접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작업실 근처의 카페를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자주 가서 확인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 직접 가져다줄 수 있어서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는 곳. 청년은 고래들 사이를 빠져나와 자신의 작은 조각배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래를 떠올렸다.
청년은 모비딕을 잡을만한 능력도 없었다. 잡을 능력이 있어도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 마한 걸 잡으려면 목숨 걸어야 했다. 에이헤브처럼 타오르는 복수심과 열정이 있어야 했다. 그는 그런 게 없었다. 그의 두 다리는 멀쩡했다. 만약 고래에게 한쪽이 뜯어 먹혔어도 남은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 같았다. 누가 미쳤다고 저 거대한 것에 덤벼들까.
청년은 차라리 새우를 잔뜩 잡고 싶었다.
"어쩌면, 정말 운이 좋다면 포레스트처럼 새우잡이로 성공할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