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청년과 믿음

by 글도둑

청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믿음이었다. 성공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은 청년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청년은 커피를 들고 있었다. 덕분에 창업은 커피와 관련 있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로스터리를 차리게 되었다. 전부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창업할 거라고 늘 이야기했다. 그가 창업을 준비하고 공부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말해줬다. 뭐든지 열심히 계획하고 실천하는 청년이라면 잘 해낼 거라면서. 그럴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창업이라는 말을 늘 달고 살면서도 그는 현실을 떠올렸다. 카페 폐업률이 얼마나 높던가. 그는 창업에 앞서서 실패부터 떠올렸다. 망해도 괜찮아야 했다. 설령, 내가 띄운 배가 좌초되더라도 한 번쯤은 띄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검은 바다에 나가자 청년은 두려웠다. 이게 맞는 걸까. 정말 망해도 좋은 걸까. 아니, 망했는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을까. 그러다가 책 속에서 봤던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전 제 통장이 파괴되면 패배한단 말입니다. 게임 속에도 승리 조건과 패배 조건이 있더라고요. 죽어도 부활하지만 패배 조건이 달성되면 진단 말이죠."


청년은 한숨 쉬면서 그의 패배 조건을 떠올렸다. 이 공간을 유지할 자금이 바닥나는 것. 통장의 파괴는 곧 청년의 파멸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그는 죽어도 부활할 수 없는 목숨 하나짜리, 원코인이었다. 두 번째 기회란 없었다.


그럼에도 청년은 도망치기 싫었다.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도망이 아니라 도전을 선택했다. 도망이 아니여야만 했다. 그랬기에 그는 검은 바다로 나가야 할 운명이었다. 그가 직접 만들어낸 운명. 그는 주변에 응원을 닻 삼아 배에 옮겼다. 두려움 또한 가득 싣고 출항할 계획이었다. 분명 별을 보고 출항하겠지만 언제든 멈출 수 있었다.


청년의 믿음은 파도 같았다. 때로는 크고 때로는 낮은 파도. 주문이 들어온 날에는 기분이 저 위로 올라갔다.


"나는 할 수 있어. 손님이 점점 늘어날 거고, 나는 커피 팔아서 밥벌이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더 큰 로스팅 작업실을 마련하고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겠지. 그때는 커피나무도 조금씩 길러보면서 생두도 직접 재배하면서 커피 연구도 해볼 수 있을 거야."


반대로 단 한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이어진다면 불안감에 몸서리쳤다.


"망했다. 이대로 월세만 내면서 알바를 평생 해야 할 거야. 아니지, 알바는 젊을 때만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얼른 취직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이제 뭘 배워야 하지. 그나마 대학이라도 졸업해둔 게 참 다행이다. 역시 보험으로 졸업장 따길 잘했어. 여기를 정리하면 얼마나 건질 수 있을까. 건질 수는 있을까. 차라리 조금이라도 빨리 정리하는 게 더 좋지는 않을까?"


청년은 80일 넘게 고기를 낚아 올리지 못한 노인이 어떻게 버텼을까 궁금했다. 치미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매번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청년은 주변에 응원이 더 부담스러워졌다. 닻이 무거워질수록 배는 더 느려졌고 검은 바다는 더 시커멓게 보이기만 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청년은 글을 썼다. 로스팅을 하지 않는 날엔 글을 썼다. 손님을 낚기 위해서, 작업실을 어떻게든 이용하기 위해서. 청년은 창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니 준비가 미흡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더 빠르게 준비하고 공부해야 했다. 청년은 다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주문이 들어올지 고민하면서.


"지하철 광고나 SNS에서 홍보를 해야 할까. 아니면 플리마켓이라도 나가서 홍보해야 하나. 어떤 방법이 좋을까. 우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준비를 해보자. 플리마켓 셀러 신청은 어디서 해야 하지?"


청년은 아직 두려움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몰랐다. 그냥 얻어터지면서 받아들였다. 대신 쓰러지진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두려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온다고 믿었다. 주문이 안 들어올 거라는 두려움이 생기면 주문이 들어올 법한 일을 하면 된다고 믿었다. 그래도 주문이 안 들어오면 또 다른 일을 계획했다. 그럴 땐 주변의 믿음이 도움이 됐다. 조언을 듣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 믿음은 무거웠지만 그 대신 쓰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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