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청년과 목수

by 글도둑

비싼 수업료를 내고 찾아낸 청년의 공간은 꽤 넓었다. 그러나 창고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보니 이리저리 손 봐야 할 곳이 많았다. 낡은 배를 수리하기 위해서 목수를 불러야 했다. 그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눴다. 우선, 철거부터 해야 했다. 벽에 박혀있는 못과 구멍을 메우고 쓸모없는 장판을 뜯어냈다. 청년은 동료를 불렀다. 카페를 차리고 싶어 하는 친구였다. 그는 자기도 창업할 거라며 도울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고 청년은 서슴없이 불렀다. 나중에 자기도 돕겠다면서.


같이 열심히 일했다. 장판을 뜯고 나무판과 플라스틱 판을 걷어냈다. 바닥의 에폭시가 벗겨지면서 흙먼지가 날렸다. 성실한 육체노동의 끝에는 더 허름해진 공간이 되었다. 친구가 돌아간 이후, 청년은 마무리 작업으로 전선을 정리했다. 배전함에 있는 스위치를 내리고 전선을 잘랐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게 꺼지는 소리가 났다. 청년의 눈에는 밝은 스파크가 번쩍였다. 그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손에 들고 있던 공구를 봤다. 니퍼의 끄트머리가 살짝 녹아있었다. 그는 장갑과 고무 손잡이에 감사하며 다시 배전함으로 가서 모든 스위치를 내렸다. 멍청하게도 그는 다른 스위치를 내렸던 것이다. 청년은 다시 조심스럽게 전선을 자르고 정리했다. 마침내 작업을 다 끝내고 털썩 주저앉았다. 청년은 손을 내려다봤는데 덜덜 떨리고 있었다.


"뒤질뻔했네. 참 멍청했다, 정말. 피복 벗겨내고 하나씩 자르던지, 전원이 내려갔는지 확인하고 잘랐어야지."


청년은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일상생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우리가 편하게 이용하는 모든 것에 위험이 존재했다. 청년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이 더 짙어졌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언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살고 싶었다. 청년은 임대한 기간을 떠올렸다. 그는 2년 계약으로 공간을 대여했다. 그 기간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걸 모두 해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기 통구이가 되지 않았음에 감사하면서 청년은 뒷정리를 시작했다. 그의 눈엔 밝은 스파크가 여전히 아른아른거렸다. 짜릿한 정도론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눈 떠보니 낯선 세계가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청년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사고 이후로 그는 목수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배를 예쁘게 꾸미진 못하더라도 기능적으로 이상 없이 항해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벽면 페인트 칠을 제외한 전기, 수도, 가스, 덕트 설비 공사를 불렀다. 그리고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메우기 위해서 다른 배에 가서 일해야 했다. 알바로 일해서 번 돈으로 작업실을 하나둘씩 고쳐나갔다. 청년은 돈을 벌 때는 알바였고 돈을 쓸 때는 대표였다. 그는 텅텅 비어 가는 통장과 입금해야 하는 금액이 적힌 서류를 보면서 웃었다. 그곳에는 허울뿐인 '대표'라는 단어가 있었다.


"내가 대표라니. 사원과 바리스타, 슈퍼바이저가 내 직급의 전부였는데. 어디 가서 대표 소리 듣는 게 참 쉽네. 돈을 200만 원, 300만 원씩만 쓰면 되는 일이었구나."


청년은 명함도 만들기로 했다. 명함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대표'라고 적어둘 생각이었다. 1인 기업이지만 어엿한 사장이니까. 명함을 만드는데 돈은 얼마 안들었다. 꼴랑 만원 언저리의 돈이면 그 누구도 대표 명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스티커도 만들었다. 기껏 예쁘게 로고를 만들어놨는데 다양하게 활용하고 싶어서였다. 처음 제작한 로고 스티커는 생각보다 매우 작았다. 500원만 한 크기에 그는 실망했고 다시 의뢰했다. 화면으로 보는 것과 실물의 차이는 컸다. 처음 주문하는 거라 소량으로 제작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청년은 서서히 주문제작 방식과 탬플릿 사용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디자인이 괜찮은지, 너무 작지는 않은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거였다. 혼자서 모든 걸 다 결정하고 해내야했다.


벽면 페인트 칠에는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일당은 밥 값이었다. 그중에 한 명은 여자 친구도 데려왔다. 그 둘에게는 붓을 들려주었다. 테두리를 칠하라고 하면서. 청년은 그들이 속삭이는 걸 들었다.


"우리 셀프 인테리어는 하지 말자."


"아니, 셀프 인테리어 하고 싶으면 도와줘야하는거 아니야?"


한 커플을 파괴할 뻔했던 청년은 밥으로 그들을 달랬다. 페인트를 한번 칠하고 나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짜장이 탕수육. 그들의 일당이였다. 밥을 먹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누런 벽이 새하얀 빛을 내자 모두 뿌듯해하면서 말했다.


"한 번만 칠해도 깔끔한데?"


"페인트가 비싼 건가 보네. 잘 발린다. 한 번만 해도 되겠다. 그렇지?"


청년은 그들의 의견을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한번 더한다, 한번 더 한다고! 페인트는 두 번이 정석이야!"


그렇게 한번 더 페인트 칠하면서 돈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역시 통장이 털리더라도 전문가를 쓰는 게 좋다는 사실도 함께. 한 명이 지쳐서 거의 반쯤 누워서 페인트 칠할 때쯔음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잔뜩 쌓인 쓰레기를 뒤로 한채, 친구들과 밖으로 나가서 맥주 한잔 샀다. 청년은 조금씩 변해가는 공간을 덕분에 취기와 성취감이 같이 올라왔다.청년에겐 매일이 새로웠다. 늘 챗바퀴처럼 돌아가던 생활과는 달랐다. 하루가 지날수록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 그의 마음속엔 희망이 부풀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날카로운 불안감도 섞여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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