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검은 바다에 떠다니는 많은 카페들 사이에서 창업을 결심한 청년이었다. 창업하겠노라 뛰쳐나온게 백하고도 이십일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간조차 발견하지 못한채 하염없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청년이 당장 해야할 건 브랜드 로고를 정하는 것과 자리를 알아보는 것, 두가지였다. 돗대에 올릴 깃발과 항해할 배를 구해야했다. 저 넓은 검은 바다에는 이미 날고 기는 선장들이 많았다. 어느 대회에서 우승한 바리스타, 로스터가 즐비했다. 최근에는 범선처럼 거대한 카페도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청년은 고민 끝에 경쟁자가 더 적을거라 예상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음료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커피 원두를 파는 로스터리. 커피업계에 표류 중인 많은 이들에게 원두를 납품하는게 목표였다. 바다에 배가 너무 많으니 낚아올릴 낚싯대를 판다는 생각이었다.
브랜드 로고는 그림에 소질이 없었기에 돈주고 맡겼다. 40만원을 주고 만든 로고는 꽤 마음에 들었다. 청새치와 바다를 모티브로 만든 단순한 로고. 만드는 과정은 다른 사람이 했으니 순탄했으나 결정은 꽤나 힘겨웠다. 처음에는 두가지 시안이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예쁘지만 횟집 같았고 하나는 깔끔했지만 단순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로고는 단순한게 최고라는 의견이 많았다. 청년은 미적 감각이 남들보다 뒤떨어진다고 여겼다. 정확히는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신 결단은 빨랐다. 그는 단순한 로고를 선택했다. 아래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엔 날고있는 청새치. 청년은 성공을 희망하며 브랜드 이름을 중얼거렸다.
"블랙 말린."
청년이 과연 성공할수있을까. 확실하진 않아도 그는 하고 싶었다. 창업을 한다는 것은 희박한 성공 확률이라도 생긴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런 희망도 없이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청년은 그건 죄악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뼈만 남더라도 낚아올렸단 사실은 변함없다. 뭐가 됬던, 설령 망해서 문을 닫더라도 그는 기어코 바다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배가 필요했다. 그가 커피를 볶을 공간.
청년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 중 하나는 부동산에 발을 들이미는 것 자체였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취를 해본 적 없는 그에겐 부동산이란 공간이 낯설었다. 그가 타지에서 지낼 때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부동산 거래, 계약을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자에게 다가오는 두려움은 '목돈이 나간다'가 아니다. 그저 눈탱이 맞거나 사기 당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두려왔다. 무지에서 솟구치는 감정이 청년을 짓눌렀다.
그는 아무생각 없이 부동산 문고리를 잡기 보다는 인터넷을 택했다. 그리곤 인터넷 매물 중에서 가격대와 위치가 맞는 부동산에 방문하기로 했다. 막연하게 생각한 조건은 지하든 지상이든 저렴한 것, 대신 엘레베이터는 있을 것. 청년이 아무리 젊더라고 몇십키로나 하는 생두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기는 싫었다. 전화로 연락주고 도착한 부동산. 단어부터 산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서 청년은 압도됬다. 벽에 붙어있는 아파트 단지 평면도와 평수를 나타낸 숫자들. 그 밑에 쓰여있는 억 단위 금액에서 청년의 통장은 초라해졌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연락드린 상가 보러왔는데요, 1000에 80짜리 2층이요."
안경 낀 남성이 모는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청년의 집에서 15분거리의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쌓여서 유동인구는 많다는 부연설명이 뒤를 따랐다.
"여기가 항아리 상권이라고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둘러싼 곳을 말하는데, 여기 보면 아시겠지만 주차공간도 많고 주변에 유동인구도 많아요. 여기가 35평 정도 되는데 가격이 싸게 나왔어요, 아주. 2층에 엘레베이터도 있고."
청년은 2층으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중개사 아저씨는 그에게 끊임없이 낱말을 쏟아냈다. 부동산에 대해서 맹탕인 그가 정신이 어지러울만큼. 엘레베이터를 내리자, 작은 공간을 주고 두개의 문이 보였다. 하나는 노래방 문, 하나는 녹빛 유리문. 중개사는 유리문이 지금 잠겨있다며 노래방에서 키를 받아왔다.
문을 열자 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 한명이 드나들 공간이 하나 더 있었다. 오른쪽에는 철거가 된 공간이, 왼쪽에는 상단부 유리창이 깨져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닥을 보니 끌차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였다. 철거 공사하면서 짐을 옮기다가 유리창을 깨먹은건 아닐까. 청년은 왜 여기가 깨져있을까 생각하다 중개사의 말을 듣고 정신 차렸다.
"그 유리창은 임대인이 새로 해준다고 했으니까 걱정말고 이쪽으로 들어와보시죠. 여기 공간이 아주 넓어요. 채광도 좋고. 카페하면 딱 일 것 같지 않아요?"
청년은 한숨이 나왔다. 그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접었다. 청년이 필요한 공간은 로스팅 작업실이였다. 커피 음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는 생두 업체, 로스터리, 카페가 있다. 절대 다수의 사람은 카페를 이용한다. 당연히 카페가 제일 많다. 많은 만큼 경쟁도 빡세다. 바다에 배가 너무 많아서 물고기를 낚아올리기 힘들달까. 그 다음엔 로스터리가 있다.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바다를 떠다니는 이들을 위한 낚시대나 그물, 작살을 만드는 곳이다. 생두사는 낚시대를 만드는 재료를 사오는 곳이라고 볼수있다.
청년은 바다에 낚시배가 너무 많으니 그물과 작살을 팔려는 쪽에 속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스터리라고 하면 이해를 못했다. 그냥 '아, 카페하시는구나.'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다. 로스터리 카페가 늘어나면서 커피를 볶는 곳에서는 당연히 아메리카노를 팔거라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년은 로스터리에 대해서 한번 더 설명하려다가 참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 수도와 전기세, 기타 등등을 포함한 관리비가 10만원이고 월세 80에 대한 부가세를 포함하면 한달에 98만원 정도 들거에요. 보증금은 써놨던대로 1500만원이고. 이 근처 상권에는 이만한 평수에 이런 공간 없어요. 근방에 있는 매물은 이게 끝이에요."
공간을 둘러보던 청년은 어디에 로스터를 설치하고 바를 만들지 구상을 그려봤다. 상상 속에 있는 이미지를 꺼내어 덧대보니 너무 공간이 넓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달에 100만원씩 빠져나간다면 통장이 몇 개월이나 버틸수있을까. 그의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틱틱 거리다 작동을 멈췄다. 대신 입을 열었다.
"아, 넵. 잘 봤습니다.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청년은 공인중개사의 명함을 지갑 깊숙히 쑤셔넣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청년은 이 판에서 호구가 없다면 내가 호구라는 말을 떠올렸다. 인터넷을 다시 뒤적거리면서 조건에 맞는 위치와 금액을 조정했다. 그 과정에서 자영업자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입지 보기 전에 감당할수있는 월세부터 확실하게 정하고 찾아보세요. 굳이 1층에 들어갈 이유가 없잖아요. 카페 할거 아니라면서요. 아직 확실히 마음을 못정하신거 아니에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한켠에 카페라는 존재가 숨어있었다. 그는 기어코 그 부분을 뜯어냈다. 조건을 수정해서 월세 먼저 낮췄다. 월세는 50만원 전후, 평수는 15평 내외, 지하, 지상 상관없으나 1층이 아니면 반드시 엘레베이터가 있어야 할 것. 한 달을 둘러본 끝에 60만원짜리 매물이 나왔다. 월세 60만원, 부가세 6만원, 관리비 10만원. 한달에 약 80만원정도가 드는 공간. 15평에, 역에서 걸어서 15분, 1층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서 뭘 할수있을까. 청년은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