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청년과 조각배

by 글도둑

청년은 1층이라는 점에 강하게 끌렸다. 예상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창고로 사용되고 있던 이곳은 직사각형으로 길쭉하게 빠져있었다. 바깥쪽에는 작은 창문도 하나 나있었다. 도로 쪽에서 보이는 방향은 아니지만 위층에 교회가 있어서 사람들은 자주 지나다닐 것 같았다. 환기를 하고 앞에 바를 살짝 꾸미면 손님 오기 좋아 보였다. 지웠다고 생각했던 카페가 불쑥 튀어나와 자기주장을 펼쳤다.


'에스프레소 바처럼 시음하고 커피 원두도 팔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이 근처에 에스프레소 바는 없잖아!'


청년은 이 공간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 시작했다. 식품가공업 허가는 나오는지, 서류상 문제 될 건 없는지, 추가로 뭘 더 해야 하는지. 로스팅을 하면서 연기로 인한 민원이 들어오진 않을지. 모든 문제점을 검토해보자 전부 괜찮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월세가 조금 비싼 정도였다.


청년은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첫 계약이었다. 그는 중개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계약 일정을 잡았다. 2달 뒤에 입실이었다. 청년은 평면도를 받아서 매장 배치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식품가공업 허가를 위해 구획을 나눠야 했다. 로스팅 공간과 에스프레소 바 공간, 그리고 생두를 쌓아둘 공간이 필요했다. 거기에 사무업무를 볼 공간도 필요했으니 총 4곳으로 공간을 쪼개기 시작했다.


약 14평 정도 되는 공간이지만 혼자서 쓰기에는 딱 알맞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식품 가공업 허가에 대한 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식품 관련 허가가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시청과 구청에 연락해서 허가가 나오는지 재확인했다. 동시에 중고 로스터,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아봤다. 중고 거래 매물을 찾아보고 연락을 돌려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첫 계약서를 쓰는 날이 다가왔다. 건물주는 어느 노부부였다. 그 두 분은 계약을 이미 여러 번 해본 적이 있는지 꽤나 능숙하게 도장을 찍었다. 서류들 사이에 한번, 접어서 뒷장과 앞장 절반씩 도장이 찍히게 또 한 번. 청년은 그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이게 바로 연륜이라는 걸까 싶었다. 건물주의 연륜. 청년은 도장 대신 서명을 했다. 노부부는 청년에게 덕담을 건넸다.


"여기 들어왔던 사람들은 다 잘돼서 나갔어요. 지금 쓰는 화장품 회사도 더 커져서 이전하고 여기를 창고로 쓰고 있던 거였죠. 부디 잘 되길 빕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계약금 150만 원을 이체했다. 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짜리 1층이 이제 청년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서 2주 동안 다른 곳에만 신경 썼다. 드디어 구한 나만의 작은 배를 어떻게 꾸밀지, 어떤 업체에 연락을 해서 어디서부터 설비를 해야 할지. 청년은 밤마다 인테리어 사례를 봤다. 저쪽 판에는 얼마나 사기꾼이 많은지 피해 사례가 수두룩 했다. 인테리어의 바다엔 뒤통수는 물론, 앞통수도 후려치는 해적들이 즐비했다. 선금을 받아놓고 날림으로 공사해서 일정을 늘리고 돈을 더 받아가는 놈, 선금 받고 잠수 타는 놈, 나중에 보니 공사 대충 해서 물이 새거나 마무리가 전혀 되지 않은 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은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그래서 청년은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오전, 오후 한 번씩 공사를 확인할 것, 공사 대금의 최대 50%까지만 줄 것, 평균적인 가격대를 알아보고 그 언저리에서 계약할 것. 그러던 중, 청년은 문득 궁금해졌다. 중개사가 같은 건물 내에서 도로에서 바로 보이는 카페가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했다. 그곳은 얼마일까? 청년은 단순한 호기심에 다시 부동산 사이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같은 중개사가 같은 건물, 같은 평수의 매물이 1000에 50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청년은 당황했다.


"뭐지? 내가 계약한 곳보다 더 저렴하잖아. 내가 너무 급하게 계약했나? 너무 비싸다고 하소연 좀 할 걸 그랬나? 만나서 계약할 때 우는 소리 좀 했으면 나도 저 가격이었을까? 덤터기 맞은 건가?"


그는 약이 잔뜩 올랐다. 월세 60만 원에 부가세 6만 원, 그리고 관리비 15만 원이면 한 달에 81만 원이 나간다. 일 년이면 자그마치 972만 원. 청년은 새로운 곳을 찾아봤다. 다른 매물을 찾아보면서 머리는 계산에 몰두했다. 계약서에는 중계 수수료를 내고 계약금을 포기하면 계약 해지가 가능했다. 청년은 억울함을 집어삼키며 바다에 뿌려야 하는 돈을 가늠했다. 계약금은 150만 원이요, 중개 수수료는 70만 원이었다. 총 220만 원을 날리더라도 이득인 장소가 있어야 했다. 놀랍게도 있긴 있었다. 방금 올라온 따끈따끈한 매물이.


청년이 새롭게 발견한 곳은 지하 1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상가였다. 심지어 주차장 쪽에 문이 나있어서 찾기 어려웠다. 대신 공간이 넓었다. 1/3은 임대인이 사용하고 있었다. 약 40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2/3을 임대를 주고 있었다. 계산해보니 실 면적은 약 25평. 임대료는 1000에 30이었다. 심지어 부가세는 없었고 전기, 수도, 관리비 명목으로 15만 원만 내면 됐다. 즉, 한 달에 45만 원이면 유지가 가능한 공간이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일 년에 540만 원이면 됐다. 청년의 멍청함으로 지불한 돈 220만 원까지 포함하면 760만 원. 즉, 계약을 날려도 200만 원이 남는다. 2년 계약이라면 갭은 더 커졌다.


월세는 절반에 평수는 2배 가까이 더 넓다. 청년은 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조각배는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변경되었다. 다만 지하에 주차장 쪽으로 문이 나있긴 하지만. 청년은 이전 중개사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계약했던 사람입니다. 더 괜찮은 매물이 없나 싶어서 사이트로 조금 찾아봤는데, 같은 건물, 같은 평수로 더 저렴한 매물이 올라왔더라고요? 그건 뭔가 궁금해서요."


"아, 그거 안쪽에 창고 용도로 사용하는 곳인데 실제로는 조금 더 작은 평수예요. 다른 매물이에요. "


"아 그래요? 그건 그렇고 찾다 보니 더 괜찮은 매물을 봐서 계약 파기하려고 하는데, 위약금과 중개 수수료만 내면 되는 건가요?"


그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한 회사의 선장이 될 거라면, 실패의 고통도 당당하게 감내할 줄 알아야 했다. 돈을 버려서 돈을 벌어야 한다면 청년은 기꺼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부동산에 방문해서 중개 수수료를 결제하고서 청년은 장부에 항목을 하나 더 만들었다. '인생 수업료'라는 항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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