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B 베이커리 폐점하는 날. 평소대로 출근해서 평소보다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7시에 퇴근하는 일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별 생각은 안 들었다. 회사도 때려치웠는데 알바야 뭐, 별거 없을 듯했다.
도착하자마자, 보내야 할 짐이 잔뜩 쌓여있었다. 10시 30분이 되자 인사와 함께 백화점에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백화점 직원이 오더니 잔뜩 쌓여있는 짐 때문에 짜증 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금 고객님들 오시는 거 안 보여요? 이거 빨리 안 보이게 정리해요! 뭐하시는 거예요, 지금!"
'폐점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할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사람이 말 한마디에 이렇게 짜증이 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고객님들이 오기 전에 짐을 다 치워놓는 게 맞다. 그렇지만 페점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뭘 더 신경 쓰겠는가? 심지어 본사에서 제대로 신경도 안 써서 여기 있는 직원들 전부 그만둘 예정인데 말이다. 아무리 백화점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말을 너무 막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해는 되지만 공감해주긴 싫었다.
"점장님께 말씀드릴게요. 네, 네."
점장님께 말씀드리고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장님은 신경질적으로 직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천천히 박스 포장을 시작했다. 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층으로 내려갔다. 지하 창고에 잔뜩 쌓아놓은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그래도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이제 없었다. 창고에 짐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나려 가는 찰나, 본사 사람들이 들어왔다.
"아,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리 물건이죠?"
유니폼을 보고 내가 아르바이트생인 것을 알아챈 그들이 물었다. 창고 내의 우리 구역을 말해주고서 창고를 빠져나왔다. 이들을 도와주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런 목적으로 알바를 시작한 건 아녔으니까. 점장님만 아녔어도 안도와 줬을 텐데. 점장님과 다른 직원들 때문일까, 나도 본사 직원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이 회사는 제대로 일할 줄 모르는 회사 같았다.
올라가서 다시 커피를 내리고, 빵을 포장하고, 계산을 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점장님이 홀에 나와서 단골이었던 손님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인사를 했다.
"아니,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집은 다 나가네."
"그러게요, 고객님, 그동안 자주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이거, 케이크인데 서비스예요. 제가 나중에 다른 가게로 가거나 가게를 차리면 연락드릴게요!"
그녀는 꽤나 살가웠다. 맨날 보던 다크서클이 축 쳐지고 피곤해서 녹아버릴 것 같은 얼굴에도 저렇게 활기 찬 표정이 있었구나. 2년 가까이 보던 손님들과는 포옹도 하고 명함도 주고받고 서비스로 케이크까지 드렸다. 점장님은 뭔가 홀가분해 보였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근데 다른 알바는 또 어디서 구하지..."
"글쎄요, 저는 공장도 한번 들어가 볼까 해요. 하하, 이곳저곳 찾아보고는 있는데 이번엔 뭘 할지는....."
아르바이트생들도 심경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일하는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대학교 등록금 때문에 휴학하고 투잡 뛰면서 일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겠다고 회사 뛰쳐나와서 알바를 하는 나까지. 사실상 알바가 없으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었다.
일을 하던 중에 직원 분들은 마지막 회식을 하고 돌아왔다. 근데 본사 직원들은 또 사라지고 짐 포장하는 일용직 분들만 뒤편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본사 직원들은 끝까지 밉상이었다. 직원들은 뒤에서 수다를 떨면서 이제는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본사는 어제까지도 인사발령을 내주지 않았고, 결국 모든 직원이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점장님의 말에 따르면, 다른 매장의 직원들은 인사발령이 떴는데 우리 매장만 명단이 없다고 했다. 이건 거의 권고사직 수준이 아닌가.
마지막 아르바이트하는 날는 유난히 시간이 잘 가는 것 같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유니폼을 직원분에게 건네주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정말. 짐 정리하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퇴직금 받으면 밥 한번 살게요. 이거, 단골손님들에게 주고 남은 케이크인데 하나 가져가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빵집이라서 그런지 퇴직금도 케이크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봬요!"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매장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백화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타서 뒤를 돌아보자 지하 1층에 가득 찬 매장과 직원들이 보였다. 내가 손님으로만 백화점에 들어왔을 때와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왔을 때의 느낌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냥 여기 있는 NPC로 보였던 직원들이 사람처럼 보였다. 알바를 하면 할수록 직원들에게 공손해지는 것 같다.
케이크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있었다. 설탕으로 만든 하얀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는 케이크. 냉동 상태라고는 하지만 5개월이나 된 케이크인 듯싶었다. 먹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게 받았다. 새하얀 눈이 내린 치즈 케이크는 그래도 맛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