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에서 일하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학력 컴플랙스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의미였다. 내가 가장 대답하기 애매할 때는 '학생이세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질문할 때였다. 연구원에 가서 처음으로 같이 점심을 먹었을 때가 바로 그랬다.
한 달 정도 근무하는 인턴이지만, 그래도 신입이라고 회식을 하자며 차를 타고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때 생일이셨던 박사님이 한분 계셔서 겸사겸사 간 곳이었다. 결제는 당연히 부서 법인카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쫄래쫄래 따라가서 셀바에서 음식을 잔뜩 퍼서 자리에 앉자, 질문이 들어왔다.
"그럼 지금 학부생이세요? 몇 학번이세요?"
학번이라. 나와 전혀 상관없는 숫자였다. 사번이나 군번이라면 또 모를까. 나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학교보다는 고졸 취업을 선택했고, 조선업에서 근무하다가 경영 악화로 퇴사했으며 지금은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워킹 홀리데이는 캐나다를 지원했으며 레터는 아직도 안 나왔고, 올해는 조금 쉴 생각이라고 말했다.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최소 학사, 그리고 학회에서 인정받는 박사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단순한 질문 하나를 받을 때면, 나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이렇게 한 질문에 기나긴 대답을 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 뒤에 따라오는 다양한 질문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사회에서 독특한 취급을 받는 현실이 싫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대학을 가고 싶으면서도 반골 기질이 튀어나와 대학을 안 가고도 성공해보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때로는 그냥 '고졸이에요.'라고 대답하고 넘기고 싶었지만, 그럼 편견이 생길 것 같아서 싫었다. 나를 얕잡아 볼 것만 같았다. 내가 무시당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지만, 그 덕분에 꽤 큰 열등감을 얻었다. 내게 없는 학벌과 대학교 졸업장은 내가 망가트린 형 장난감처럼 숨기고 싶었다.
그 뒤에는 애인 여부, 나이, 사는 곳 등등 간단한 청문회를 거쳤고 별 탈 없이 식사를 끝냈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학력에 대한 부분을 신경 안 쓰시는 듯했다. 오히려 어린 나이를 부러워했지, 학력에 대해서는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차 안, 배가 불러서 몸이 무거웠다. 소화가 잘 안돼서 그런지, 트림이 나올 것 같았다. 힘겹고 묵직했다. 음식을 소화시키느라 피가 전부 위장으로 쏠렸는지 머리가 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