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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14. 2024

사실 나는 양극성 장애


두 번째 병원이다. 이곳 의사 선생님은 나이가 조금 있으신 여자분이다. 나는 처음 그 병원을 방문한 날 진료실 문을 열자마자 자리에 앉기도 전에 눈물을 터트렸다. 그날 당황해하는 의사 선생님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이 병원 의사 선생님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나의 상태에 대해 물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눈물을 다 받아주면서도 나의 웃음을 이끌어 주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또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다.


두 번째 진료날, 나의 병명은 우울증에서 양극성 장애로 바뀌었다. 다른 말로 조울증이다. 조증과 울증이 시간의 간격을 두고 번갈아 나타난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얼마 전 양극성 장애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소름 끼치게도 나와 많이 닮은 작가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도 양극성장애라고 진단을 내렸다.


작년 우울증 치료가 6개월을 넘어가던 시점에 조증이 시작되었다. 그땐 드디어 우울증이 끝났다고 얼마나 행복에 겨워했던지. 갑자기 사업을 시작한다며 이것저것 알아보고 잠도 줄여가며 일을 했다. 에너지가 넘치고, 잠을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고, 머릿속에 넘치는 아이디어를 빨리 실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로 몇 주를 지냈다. 돈도 많이 쓰고 일을 벌이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는 갑자기 왜 그러냐, 결단력이 있어 일 진행이 빠르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무슨 일이건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 저 높이 올라가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실패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나의 조증은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 그전에도 몇 번의 증상이 나타났었다. 그때가 오면 항상 돈을 쓰고, 자신감이 넘치고, 주변과의 마찰을 겪었다.


조증은 무섭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하게 한다. 그리고 단지 치솟는 기분에 의존해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나면 아주 깊은 우울이 온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지속되다가 우울해지고 다음은 슬퍼진다. 혼자 있게 되는 순간이 오면 자꾸 눈물이 난다. 거실 바닥에 철퍼덕 누워 물에 푹 젖은 솜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것도 지치는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고 또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엔 눈을 뜨기도 어려운 상태로 겨우겨우 발자국을 떼며 걷는다.


지금은 깊은 우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조증 때문에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다시 슬퍼진다.

언제 끝나는 건지, 끝이 있는지 모르는 양극성 장애 치료의 시작이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으며 불안감을 낮춰보지만 내가 양극성 장애라는 사실이 나를 또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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