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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선 Oct 15. 2024

우울에 빠졌다


우울에 퐁당 빠졌다. 축 처진 채로 기어 나와 철퍼덕 눕는다. 일어날 수 없는 내가 싫어 또 우울에 퐁당 빠진다. 헤어 나올 수는 없다.


초등 아이들의 학기 중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 아이들 학교 갈 준비를 돕는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머리도 묶어주고. 예쁜 아이들이 첫째, 둘째 차례로 등교를 하면 나는 곧장 거실 바닥에 철퍼덕 쓰러진다. 일어날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팔 하나 들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면 우울에 푹 빠져버린다.


나의 두 번째 의사는 말했다. 당뇨병 환자에게 당뇨를 참으라고 할 수 없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조절을 해보라고 할 수 없듯이 우울증 환자에게도 우울해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힘내라고, 좀 걸어보라고, 잘 먹어보라고 말하지 않는 의사가 정말 고마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의사여서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지금 그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도무지 힘이 나지 않고, 잘 걷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한다. 그냥 우울에 젖어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은 설거지를 하다가 눈물을 참고, 또 어떤 날은 빨래를 개다가 왈칵 쏟아진 눈물을 얼른 닦아 없애기도 한다. 언제나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꾹꾹 눌러 참고 있다. 눈 속에 참고 있는지 마음속에 참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눈물이 나 면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만다. 위태한 일상이다. 누가 나를 톡 하고 건드리면 나는 툭 하고 맞은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럼 내 안에 있던 눈물이 찢어진 구멍 밖으로 쏟아져 다시 막는데 시간이 걸린다.

나는 언제나 위태롭다. 내 몸 가득 눈물이 차 있는 상태로 억지로 참고만 있다.

약을 꾸준히 먹는 지금은 아주 조금씩, 아주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다. 어느 날은 눈물이 잘 참아지기도 한다. 잘 걷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조증은 무섭다. 그리고 우울증은 슬프다. 나를 언제나 눈물 흘리게 만들고 감정이 격해지게 한다. 언제까지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리고 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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