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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9년 전 달랏

관광객이 몰리기 전의 달랏 이야기

by 반쯤 사이공니즈

누군가 베트남에서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달랏을 알려주었다.


스물 초반 무렵에는 달랏을 시도 때도 없이 다녀왔다.

달랏은 호치민에서 비교적 가깝고, 호치민보다 훨씬 싼 물가로 대학생 시절 부담 없이 다녀오기 좋았다.

진짜 매력은 항상 덥기만 한 호치민과는 다르게 고산지대에서 풍기는 한적한 분위기와 그에 어울리는 쌀쌀한 날씨 그리고 달랏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럽 같은 작은 마을의 풍경이었다. 달랏은 특별하다.


어디를 달려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달랏 사람들의 볼은 쌀쌀한 바람에 붉게 물 들어있었다.

호치민에서는 입지 못하는 두꺼운 맨투맨이나 후드티를 챙겨 와 입고 다녔다. 내 옷장에는 달랏 야시장에서 5만동 주고 샀던 후드티가 항상 걸려있었다. 언젠가 다시 갈 달랏에 입고 가기 위해서.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별장을 짓고 휴양지로 만들려고 했던 곳 이라는데, 그만큼 많은 잔재가 남아있고 시내 중심지에는 오래된 건축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호텔들도 많다. 그들이 남긴 흔적들 위로 베트남사람들의 삶이 묻으며 지금에 닿았나 보다.


Hotel Duparc Da Lat

애정필터를 통해 보는 달랏


한국에서 친구가 오거나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과 같이 가면 내가 투어가이드 역할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은 애정필터효과가 있다는 것처럼, 내가 사랑한 달랏은 어떤 부분이 사랑스럽고 멋진지 정확하게 알기에 방문했던 모든 지인들이 달랏에 크게 만족했다. 이미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내가 추천하는 달랏의 장소와 음식을 소개한다.


1. 쭉람 (Truc Lam) 불교사원

차로도 갈 수 있지만, 이왕 가는 거 케이블카역 Robin Hill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Truc Lam 불교사원으로 가면서 경치도 구경하는 걸 추천한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 자세한 정보는 생략하겠다. 사원은 너무 노출이 많은 옷차림은 입장할 수 없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두를 수 있는 치마 같은 것이 있으니 입어도 된다.


산속에 있는 불교사원 또한 볼거리이지만 나는 이 사원을 통해 호수로 내려가는 산길을 좋아한다.

사원 안에 들어가면 입구기준 왼쪽 편으로 보면 공원처럼 꾸며져 있는 곳이 있는데, 그쪽을 둘러보다 보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조촐한 산길이 이어지는데 대부분 관광객들은 거기서 멈춘다. 하지만 돌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찌엔람(Truyen Lam) 호수에 닿는다. 나는 그 인적 드문 산길이 좋다. 그 길의 끝이 호수로 이어지는 것도. 그 호수도 유명한 관광지로 지금은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예상되니 참고하시길.

Truc Lam 불교사원 뒤편의 산길
Truyen Lam 호수

2. 달랏 기차 (Da Lat역에서 - Trai Mat역까지 운행)

달랏 기차역은 이미 너무 유명하다. 거기에 가면 오래된 기차역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 실제 기차가 운행된다. 미리 인터넷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시간 맞춰 달랏 기차역에 가면 표를 구매할 수 있다.


짜이 맛(Trai mat) 이라는 역에 정차했다가 1시간 정도 정차한 뒤 다시 달랏역으로 돌아오는데, 별거 없지만 그저 그 오래된 클래식한 맛이 나는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면 너무 기분이 좋아지니 시도해 볼 만하다.

짜이맛 (Trai Mat) 기차역

그리고 정차한 Trai Mat역에서는 걸어서 3분 거리에 린픅(Linh Phuoc) 불교사원이 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가면 골목안쪽에 있는 린픅 사원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주변에 갈 곳이라곤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이 사원은 꽤나 화려하고 거대하다. 내부 진입이 가능한 사원의 지하로 가면 지옥을 구현해 놓은 미니 귀신의 집 같은 느낌의 체험관이 있으니 시도해 보시길.


그리고 사원안쪽에 있는 노점에서 요거트 하나 먹어서 당 충전하면 좋다. 아래 사진처럼 저렇게 되어있는데 수제 요거트다. 개당 대충 15,000동~20,000동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Linh Phuoc 사원의 노점

3. 달랏 음식

달랏하면 바로 떠오르는, 반짱능 (Banh Trang Nuong)은 매일 먹어줘야 한다. Banh Trang은 라이스페이퍼를 뜻하고, Nuong 은 굽는다는 뜻이다. 반짱 위에 풀어둔 계란물을 붓고, 말린 새우, 소시지, 쪽파 등등 다양한 토핑이 들어간다. 그걸 약한 불에 구워주면 바삭하면서 짭짤한 반짱능이 완성된다. 아 지금도 글 쓰면서 너무 먹고 싶다.


밤이 되면 시장 근처로 빼곡히 깔리는 반짱능 상인들, 맘에 드는 곳에 가서 주저앉아 방금 구워진 뜨거운 반짱능을 손에 쥐고 먹던 순간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으로 종아리와 발이 시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몸을 웅크리고 반짱능과 뜨거운 두유를 한잔 먹는다. 짭짤하고 고소한 반짱능이 물려올 때쯤 달짝지근한 두유 한 모금은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두유는 스어 더우 난(Sua Dau Nanh)으로, 대부분 반짱능 상인들 옆에 세트로 붙어있다. 뜨겁게 혹은 차게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아무 말 안 하면 설탕을 넣어주는데 이게 싫다면 노슈가를 부탁하면 된다.

2016년도 달랏 시장


그리고 최근에 어머니를 모시고 달랏을 갔을 때, 까다로운 어머니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이 있었다. 2박 3일 동안 3번은 먹었던 그 음식 바로 Ném Nướng (넴 느엉)이다.


아래 사진에 있는 밑에 깔린 저 소시지 같은 것이 구운 돼지고기꼬치로 Ném Nướng (넴 느엉) 이다. 먹는 법은 간단하다. 같이 주는 라이스페이퍼를 잘 펴서 넴느엉과 돼지껍질튀김, 그리고 야채와 절임 오 이등등을 넣어서 둘둘말아 땅콩소스에 찍어먹는다.


라이스페이퍼가 좀 질겨서 힘껏 물어뜯어 먹어야 한다. 이게 참 맛있으니 꼭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반짱능의 라이벌, 반깐(Bánh căn)을 절대 빼먹어서는 안 된다. 반깐 발음이 오동통한 면발이 특징인 국수인 Bánh canh 이랑 거의 흡사해서 헷갈리기 쉬운데, 스펠링을 잘 보고 찾아보면 된다.


유명한 반깐집은 아마 달랏시장을 근처의 시내 골목길 중 Đường Tăng Bạt Hổ 라는 길에 많았다. 길의 초입부터 여러 곳이 보인다. 아무곳이나 가서 먹어도 맛있다. 내가 예전에 가던 정말 찾기힘든 골목길안에 있던 반깐집은 아쉽게 없어져 소개하지 못한다.


반깐은 한 접시에 10개 정도 되는 쌀반죽과 계란을 섞어 구운 빵? 같은 것과 미트볼이 들어있는 따뜻한 국물이자 소스인 것이 나오는데 거기에 고추로 매운 간을 맞추고 빵을 담가서 미트볼과 함께 먹는다.


자리에 앉으면 계란(쯩가-Trung ga) 을 원하는지 메추리알(쯩꿋-Trung Cut)을 원하는지 물어보는데 그냥 아무거나 선택해도 맛있다. 그러고 한 접시 시켜 먹어보고 맛있으면 더 시켜 먹으면 된다. 맛있어서 눈물 나올 정도니, 인원이 많다면 미리 많이 시키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여기에도 두유 조합이 괜찮다.

2017년도 골목길 반깐집 (아저씨가 반깐을 굽는 모습)




3 Không ở Đà Lạt

내가 굳이 제목을 9년 전 달랏이라고 붙인 이유는, 달랏이 본격적으로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베트남에서는 예전부터 유명한 이야기로 '달랏에는 3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2016년도 달랏

1. 구불구불 경사가 가파른 달랏의 길 때문에 신호등이 없었다. 물론 차도 오토바이도 많지 않아서 신호등이 없이도 문제없이 일상이 돌아갔다.

2. 시클로 또한 가파른 길이 많은 지형 때문에 운행하기 힘들었다.

3. 그리고 에어컨은 당연히 추운 날씨 때문에 틀 필요가 없으니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의 달랏은 신호등이 생겼으며, 늘어난 차들이 도로 위에서 뒤엉킨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늘어나고 관광지를 만들면서, 시멘트를 실은 큰 트럭들이 위험하게 곧곧을 누빈다. 욕심껏 산을 깎아낸다. 거리에는 먼지가 일고, 시끄럽고 화려한 간판들이 줄지어 생겨났다. 순수하고 시크했던 달랏 사람들은 지치고 날카로워졌다.


달랏의 발전에 나는 다소 안타까움이 느껴지지만, 그전의 달랏을 나는 충분히 누렸다. 그리고 독차지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안다. 그저 달랏이 좀 더 오래 순수하게 머물러주길 바라본다.


2016년도 달랏 쑤언 흥 호숫가 (Ho Xuan Hu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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