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머문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관계를 배운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있게해준 떠나간 그분에게
한 문장을 남겼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어쩌면 사실 그리움에 사무쳐 보고싶다고
그 누구보다 소리지른 시끄러운 말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그분의 미니홈피에 남겨진 한마디
“미워… 나빠 진짜나빠!! 나한텐 없는 사람
왜 나 안보러와!! 근데 보고 싶어.”
어디에도 정확히 닿지 못한 감정이
불완전한 문장으로 남았고,
그 말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아주 오랫동안 남았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문장은 발화의 순간을 지나
해석의 시간에 들어서면,
그 의미는 종종 처음의 진심과는
다른 무늬를 입는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상처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오해였으며,
어린 나에겐 그저
‘사랑’이라는 단어를 꺼내 쓰지 못한 날의 고백이었다.
언젠가 들었다.
그 문장이 어른들의 법정자리에서 펼쳐졌다고.
감정은 설명되지 못한 채 남겨졌고,
그 누군가는 내 메세지 한마디가 상처라며
협조할 수 없다고 어른들의 자리에서
아이의 한마디를 꺼내놓았다.
나는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아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무엇이 오갔는지는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는 식으로
마무리되었고,표면은 다시 평온해졌다.
그러나 감정은, 정리된 숫자보다 훨씬
오래 흔적을 남긴다.
그 일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관계는 언어보다 넓고,
언어는 관계보다 오래 남는다.
말은 그 순간의 감정을 담고 있지만,
글은 때로 그 감정보다 오래 살아남아
문장의 맥락을 잃은 채
새로운 의미로 읽히곤 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근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기억이 된다.
지금의 그아이는,
그때보다 훨씬 많은 말을 알고,
더 많은 감정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말의 무게와 책임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감정도
당연히 닿을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때로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지킨다는 걸 안다.
그리고 때로는,
말보다 글이 더 깊이 이해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 말들을
비로소 조용히 정리해본다.
이 글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다만 말이라는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서로 다른 결로 남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어른이
되게 만드는지를 공유하고 싶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증거로, 때로는 위로로,
혹은 아주 오래 묻혀 있다가
다시 나를 마주하게 하는 문장으로 남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오해였을지도
모를 문장을 안고 살아간다.
그 문장을 다듬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