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언제 어디서나 단단한 내 목소리를 찾아서
"(기어들어가며) 안녕하세요... 3조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수험번호 몇 번.. 누구누굽니다..(끝을 흐린다)"
"(망설이며) 분기별.. 매출 변동 추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숨이 찬다)"
어떤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투나 목소리가 딱 떠오르지 않는가? 조금 과장될 수는 있지만, 우리 자신의 과거나 현재 혹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어떤 팀장님은 평소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낸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참 잘 지내고, 일도 적성에 맞는다. 팀원들과 스몰 토크를 할 때에도 적당한 분량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람들과도 아주 잘 지내는 편이다.
그런데 이 팀장님의 오랜 숙적이자 고질병이 하나 있다. 바로 여러 사람들 앞에 나가 발표를 하거나, 어려운 자리에서 보고를 하는 순간이 너무나 두렵다는 것이다. 사석에서 두런두런 얘기할 때는 전혀 문제 되지 않던 부분이 중요한 자리에선 늘 발목을 붙잡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팀장은 평소에는 말도 잘하면서 대표님 보고만 들어가면 하면 왜 이러나? 이래서야 우리가 준비한 걸 잘 전달하겠어? 발표 연습 좀 해야겠어."
부장님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아무리 잘해보려 해도 큰 변화가 없다. 발표만 하면 갈대처럼 흔들리는 이 목소리를, 어떻게 해야 꽉 붙잡아 둘 수 있을까.
이들은 모두 목으로만 말하고 있다. 가슴이 들썩이는 흉식 호흡, 즉 얕은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다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가슴이 들썩거리면서 숨을 쉬지 않나?
그렇다. 우리는 아기였을 때는 누워서 자연스레 배로 호흡을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숨의 깊이가 얕아지고 쉽고 간편한 호흡을 추구한다. 아기들이나 강아지들이 누워서 숨 쉬는 모습을 잘 보면 알 수 있다. 숨을 들이마실 때 배가 볼록하게 올라가고 내쉴 때는 쑥 내려간다. 정말 귀엽다.
그럼 보통의 성인들은 대개 평소 흉식호흡을 한다는 건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알아보자.
흉식호흡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숨 자체를 얕게 쉬기 때문에 공기를 많이 채울 수가 없다. 공기의 힘으로 소리를 밀어내야 하는데 그 힘이 약해지니 소리 자체도 연약해진다.
<목으로만 말하면 어떨까?>
1. 가슴까지 겨우 들어온 얕은 호흡이 목을 쥐어짜며 나가니 목이 금방 아프고 쉬어버린다. 자연스레 목소리가 작아진다.
2. 숨이 얕으니 소리도 얕다. 깊이가 없는 약한 목소리가 나온다.
3. 목이 아파 목소리가 작아지지만 크게는 말해야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이 목소리 톤을 높이게 된다.
4. 높은 톤으로 말하니 발성점도 올라간다. 앵앵거리는 콧소리가 나면서 목소리는 위태롭게 떨리기 시작한다.
5. 흔들흔들 연약한 갈대 같은 목소리는 결국 음이탈을 하고 만다. 아래에서 단단히 잡아주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6. 위태롭게 흔들리는 콧소리, 마침내 아이 같은 말투의, '아성'의 소유자가 되고 만다.
이제 좀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긴장이 되는 걸 넘어서서 목소리까지 떨리니 엎친데 덮친 격이었는데, 그게 나의 얕은 호흡 때문이었다니. 사람은 긴장하면 심박수가 올라가고 호흡은 불규칙해진다. 그래서 놀랐거나 아프거나, 긴장할 때 일부러 깊은 호흡을 하라고 두 손 꼭 붙잡고 후-하 같이 숨도 쉬어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긴장을 하면 내 호흡은 절로 더 얕아지니, 그럼 평소에 어떻게 해야 하는 할까. 더 깊이, 배 아래쪽까지 숨을 끌어내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떨리는 순간 본전이라도 찾을 수 있다.
그럼 이렇게 '복식으로' 호흡을 할 줄 알게 되면, 내 목소리에 어떤 변화들이 생길까?
<복식호흡을 하면 어떨까?>
1. 풍부한 숨을 가지고 울림 있게 말하게 되니, 발음이 잘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를 갖게 된다.
2. 내 숨의 깊이만큼 내 목소리의 깊이도 깊어진다. 건조한 목에서 찢어지듯 나는 소리가 아닌, 건강하고 윤기 있는 목소리를 얻을 수 있다.
3. 더 이상 목이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오랫동안 말할 수 있다.
4. 말하는 사람이 편하니 듣는 사람에게도 안정감 있게 들린다.
5. 편안한 목소리는 긍정적이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만든다.
6. 목을 긁으며 말할 땐 몰랐던 숨겨진 나의 멋진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와. 이쯤 되면 이제 복식호흡이 뭔지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한번 도전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타고나기를 원래 목소리가 좋은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보통은 연습과 훈련으로 만들어 낸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복식호흡을 이곳저곳에서 배우거나 시도해 봤을 것이다. 우리는 필라테스나 요가 등 운동을 할 때도 복식호흡을 한다. 운동에서의 호흡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가르쳐 줄 복식호흡은 운동할 때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운동할 때는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지만 말하기에서의 복식호흡은 그와 반대다. 입을 벌린 채로,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뱉으며 말을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창 말을 하며 숨을 쉬어야 하는데, 입을 다물고 코로 숨을 마셨다가 그제야 입을 벌리고 말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말에 버퍼링이 생기고 호흡이 끊긴다. 공기를 뱃속까지 한껏 들이마셨다가 다시 그걸 내쉬는 힘을 이용해 말을 뱉어내야 한다. 그런데 입을 다물고 숨을 채우고 다시 벌려서 말을 한다? 흐름이 뚝뚝 끊기고 말에 밀어내는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뉴스 앵커들이나 배우들을 잘 보면 말과 말 사이 내내 입을 꽉 다물지 않는 것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입을 완전히 다물고 있으면 다음 멘트를 위해 입을 벌리고 숨을 훅- 들이마셔야 하는데 그게 티가 많이 난다. 그래서 계속 살짝 입술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숨을 채우기 위해서다.
<복식호흡 발성 연습 방법>
1. 턱을 벌리면서 입으로 빠르게 하- 숨을 들이마신다. 조금 의도적인 느낌으로 제대로 숨을 배 안에 채운다.
2. 뱃속에 숨을 채우면 배가 부풀어 오른다. 풍선을 생각해 보자. 풍선에 공기를 넣으면 풍선이 부푼다. 반대로 공기를 빼면? 쪼그라든다. 배도 마찬가지다.
3. 입으로 숨을 마실 때는 입 안을 동굴처럼 둥글고 크게 만든다. 하품을 한 번 해보자. 하품은 전염성이 있어서 하는 척하며 상상만 해도 쉽게 할 수 있다. 입 안이 최대로 커지고 목젖은 올라가고 혀뿌리는 내려간다. 입 안에 보이지 않는 공이 들어가서 공간을 넓혀주는 것 같다. 딱 그런 느낌으로 입 안을 만들고 숨을 마시고 뱉는다.
4. 배에 숨을 채웠다면 복근에 힘을 딱 줘서 뱃심으로 공기를 밀어내면서 이 사이로 쓰- 바람을 빼보자. 4초씩 해보고 잘 되면 8초로 늘려본다. 단 소리를 내지 않고 너무 많이 바람 빼는 연습을 하면 금방 어지러워질 수 있으니, 적당히 하자.
5. 이제 발성연습을 가미해야 한다. 복식호흡과 발성연습은 한 세트다.
6. 입으로 숨을 최대한 들이마시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저음으로 아- 긴 호흡으로 소리를 내보자. 역시 4초 해보고 잘 되면 8초로 늘려본다. 입 안을 크게 만들고 발성하는 것을 기억하자.
7. 긴 호흡 발성연습이 충분히 되었다면 짧은 호흡 발성연습으로 넘어가자. 짧게 스타카토 기법처럼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라고 해보자. 한 글자 당 1초 정도씩 짧게 치고, 짧은 만큼 복식호흡을 신경 써서 힘 있게 해 보자. 배에는 힘을 꽉 주고 글자마다 배를 튕기듯 한다. 배에서 소리가 올라오고, 목은 통로에 불과하다.
8. 한 손은 배에, 다른 한 손은 가슴에 얹고 연습한다. 배는 오르내려야 하지만 가슴은 움직이면 안 된다. 어깨 역시 들썩거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9. 한 호흡으로 자기소개하는 연습도 좋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숨을 채우고 뱃심으로 쭉 밀면서 말해보자.
10. 이렇게 복식호흡과 발성 연습을 매일 5-10분씩만 해보자. 2주만 해도 확 달라진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전에서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야 할 내용을 글로 쓰니 더 구구절절 길어진다. 하지만 꼼꼼히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점은 좋다.
숨을 들이마실 때 하- 하라고 하면,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말하는 중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에 일일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들리지만 듣지 않고 있는 거다. 뉴스 앵커든 발라드 가수든, 말과 말 사이에서는 하- 하고 숨을 마신다.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신경도 안 쓰인다. 기억해 뒀다가 맘껏 숨 쉬자.
6번에서 말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저음이란 또 어떤 건지 궁금한 분들도 계실 거다.
배우 이청아 님은 유튜브 쇼츠에서, 연극영화과 수업에서의 목소리 톤 찾는 방법을 공개한 적 있다. 아주 편안한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나"라고 말해 보라는 것이다. '나'라는 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힘 빼고 툭, 내뱉었을 때 바로 그 목소리의 톤이 나의 톤이라고 한다. 연극영화 수업을 듣는 학도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방법이다. 이청아 배우도 한참을 본인의 낮은 톤을 모르고 높은 톤으로 힘겹게 연기하다가 뒤늦게 자신의 톤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기 세계가 열렸다고 말한다.
그만큼 나의 편안한 톤을 찾는 건 무척 중요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계속해서 연습을 할 경우, 오히려 목소리가 상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말하기를 지속하게 될 수 있다. 내 말하기에 뭐가 문제인지 고민이 된다면, 본격적인 연습 전 '나의 톤 찾기'부터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다음 시간에는 말하기의 3요소 중 마지막, '발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안정적인 깊은 호흡으로 좋은 발성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이젠 발음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글을 읽기 전 충분히 몸을 풀고 오시길.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