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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러 와서 왜 웃지 않는 거죠

면접관의 시선

회사 다니던 시절, 면접관으로서 입사지원자들의 면접을 몇 번 보았다. 그 회사에 들어갈 때는 나도 면접을 보고 들어갔는데, 이미 회사의 구성원이 되고 나니 내가 면접관이 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직 20대였을 때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어렸는데, 그땐 내가 되게 경험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귀엽다.


대학 시절 너무 긴장하는 탓에 발표란 발표는 죄다 말아먹는 스타일이었던 나는 해결법 삼아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다. 방송인이 되는 건 둘째 치고(그러고도 싶었지만) 여길 다니면 취업 면접에라도 도움이 되겠지 싶어 나름 거금을 들여 등록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자세부터 표정관리까지. 4학년 초까지도 날 괴롭혔던 발표떨림 역시 사라졌기에, 면접을 나름 '잘' 보고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만약 긴장해 덜덜 떨며 겨우 발표하던 실력으로 면접장에 그냥 들어갔다면 아마, 음. 대부분의 면접은 그냥 '망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긴장하게 되면 당연히 내 성격을 그대로 보여줄 수도, 호감 가는 인상을 보여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면접관이 되어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출처. 언스플래쉬


면접을 보다 보면 여러 케이스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당연히 직종마다, 경력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통틀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해보겠다. 면접자의 '첫인상'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아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1. 굳어있는 유형

이 케이스는 예전의 나처럼 '긴장이 심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해한다. 보통 사회 초년생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면접장의 분위기, 규모에 큰 영향을 받는다. 면접관의 성향에 따라서도 긴장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짧은 면접 시간 동안 크게 좋아지긴 어려우니, 굳어있는 분들은 그냥 그 상태로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2. 원래 뚱한 유형

표정 자체가 원래 뚱-한 사람이다. 시큰둥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면접관의 시선에서는 대체 여기는 왜 와 있는 건지, 이 회사에는 왜 지원한 건지 약간 의아해지기도 한다. 1번과 공통분모가 있는데 오해받는 경우도 많다. 뚱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긴장이 심해 그렇게 보이는 경우 말이다. 그러면 차라리 괜찮은데, 원래 뚱하다면 더 큰 문제가 된다.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싹싹하고 밝은 유형

면접장에 들어설 때부터 느낌이 온다. 일단 표정부터 다르다. 미소를 머금고, 늘 웃는 상이다. 이런 경우 면접관이 보기에도 호감이 생기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열정 있게 할 것 같고, 소통이 잘 될 것 같아 보인다. 


사실 면접이라는 게, 한 회사에 사람을 들이는 일이니 정말 까다로워야 하는 것이 맞다. 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오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 그 한 명을 채용함으로써 회사의 앞날의 방향이 정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한 면접 자리에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임하는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점수가 정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자리에 뚱한 얼굴로 나타나 계속 인상 쓰고 대답하고, 아무런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면접을 진행할 때마다 생각보다 그런 자들이 많다는 데에 놀라움을 느끼곤 했다.

출처. 언스플래쉬


나라면 차라리 웃기라도 하겠다. 물론 실실 웃으면 실없어 보이므로 전체적으로 신뢰감 있는 표정을 짓고 있되 약간 미소 띤 입꼬리가 중요하다. 호감 가는 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의 훈련은 정말 쓸모가 있었다. 무표정으로 있더라도 '덜 구린' 표정을 익힐 수 있었다. 사람이 정말 얼굴에 힘을 빼고 말 그대로 '無표정'을 짓고 있으면 어떨까. 눈에는 힘이 풀려서 쌍꺼풀이 있다면 옅어지고, 없다면 눈동자가 반만 보인다. 광대는 툭 나오고 입꼬리는 쳐지고, 볼은 쑥 들어간다.  이게 바로 진짜 '무표정'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는 계속 호감형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 아나운서의 경우, 이렇게 해서는 곤란하다. 진지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무표정이 아닌, 약간의 표정은 짓고 있는 것이다. 그건 카메라를 통해 내 얼굴을 보고, 여러 번의 모니터링을 거쳐서 비로소 완성이 된다. 나만의 기술이 생기는 것이다. 기술이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저 나만의 소소한 방식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경험상 신입의 경우 특히, 그런 기본적인 '호감 인상'만 갖추고 밝은 목소리로 면접에 임하기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면접관이 본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대화는 부드러워지며, 당사자 역시 자신감이 붙어 답변도 술술 잘하게 된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구직'을 하는 사람들답지 않게, 뚱한 무표정으로 들어와 끝까지 표정의 일관성을 지키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무조건 억지미소를 짓고 살자는 게 아니다. 그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라는 것이다. 내가 평소 아무리 웃음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비록 웃음은 없지만 속은 정말 깊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더라도 면접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짧은 시간에 면접관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다. 간혹 본인이 그런 걸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가 가장 난감하다. 알고 보면 호감이고, 조금만 친해지면 굉장히 대하기 편안하며 일에 대한 열정도 높은 사람인데 원체 표정이 없는 사람. 흔히 말하는 극 I형이라면 이런 유형일까? 그런 경우는 안타깝지만 인맥으로 취업하거나 경력직으로 가는 경우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완전히 신입 또는 맨땅에 헤딩인 경우는 무조건 훈련을 조금씩은 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까지의 글은 면접에 임하는 자세, 면접관이 바라보는 구직자의 '첫인상'에 관한 이야기다. 취업 이후 일을 해나갈 때는 본인의 색깔이 나오고,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겨나는 게 맞다. 다만 구직자로서의 노력, 최소한의 외적 포장은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도 사회생활 능력 중 일부다.



나의 경우 위에 살짝 언급했지만 '덜 구린 무표정'을 짓는 것이 조금은 연습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하며 몸에 익히고, 사회생활을 통해 체화되었다. 하지만 사실 모든 곳에서 얼굴 근육을 의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사진 뒤에 모르고 찍히는 경우, 신랄한 날 것의 내 모습을 들켜 버리기도 한다. (골똘히 집중해서 입이 튀어나온다든지 이중턱이 된 것도 모르고 멍하게 있는다든지) 어릴 때 그걸 좀 더 빨리 체득한 친구들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예쁘게 사진 찍히는 걸 알고, 어느 쪽 얼굴이 더 잘 나오는지를 알던 친구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어릴 적 흑역사 사진이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지나간 귀여운 과거일 뿐인데. 철없던 나이를 지나 보내니 그런 것도 다 추억이다. 


어쩌면 오늘의 글에서 말한 내용들이 죄다 '꼰대스러운'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다. 보는 시점에 따라서 말이다. '결국 일만 잘하면 되지 뭣이 중헌데요?표정으로 왜 사람을 판단하죠?'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글을 이 브런치북에 살포시 넣어보려 한다. 나는 그렇다고. 나는.. 남의 시선을 꽤 신경 쓰는 편이라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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