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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기준

몇 달 만에 시골에 다녀왔다. 나의 외할머니 댁. 지금은 다른 세계로 가시고 없는 그곳. 엄마가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2주에 한 번씩 계속 가던 곳. 나에게는 친가보다 좋은 늘 편안하고 애정 어린 곳.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곳, 오래된 집.


할머니가 가시고 나서도 엄마와 아빠는 꾸준히 시골에 가고, 비어있는 집을 쓸고 닦고 가꾼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더 빨리 상한다고 했다. 사람 냄새가 남아있게 하려면, 더 자주 들러 머물러야 한다.


그런 집인데. 무려 두 달 동안 아무도 가지 않았다. 무더위 때문이었다. 핑계라고 하기엔 현실이 가혹했다. 에어컨도 없는 시골집. 유난히 지독했던 올여름 더위는 말 그대로 폭염이었기에. 한 번 가면 일거리가 넘치는 시골집, 나라도 가기 싫었을 거다. 엄마를 이해했다. 


처서가 지나며 더위가 한풀 꺾였다. 그래봤자 기록적으로 지속되던 열대야가 사라진 정도. 낮에는 아직도 무더운 참 이상한 9월이다. 뒤란과 바깥마당 옆 언덕배기가 잡초로 뒤덮였을 거라는데, 어느 정도일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편이 시댁에서 벌초를 하고 예초기를 빌려왔다. 시골집 풀도 베어 준다고 먼저 말을 꺼내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바라지도 않았고 생각도 못했던 무심한 딸인데 남편 덕에 효도를 한다. 


그렇게 가게 된 외할머니댁. (나는 아직도 '외할머니네'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왕할머니댁'이라고 한다. 존댓말은 애들이 더 잘한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 집 밖 언덕배기 정자 주변의 예초를 시작했다. 나는 구경만 할 뿐, 모든 건 남편이 척척 진행한다. 아침 9시인데도 시골은 시골이요 동산도 산이다. 모기가 잔뜩이다. 작은 산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언덕으로 한 발짝 디디자마자 엥- 모기들이 달려든다. 순식간에 두 군데에 물렸다. 아침에 가서 점심만 먹고 돌아올 거라 이런 상황까진 생각지도 못했다. 무식하게도 시골에 오며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온 뇌가 해맑은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 하나만 이렇게 입었으면 모른다. 애들 둘도 반바지에 반팔뿐이다.


잔디는 누가 좀 깎아줘서 이 정도지만, 치우지 않은 낙엽이 청승맞다.


차에서 나오지 않는 사춘기 초입의 큰아들은 내비게이션 보느라 거치해 둔 아빠 폰을 들고 음악을 듣는데 몰두해 있고, 어릴 때부터 한결같은 야생마 스타일의 둘째는 역시나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저만치 올라가 있다. 위아래 긴 팔다리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올라간 남편은 그나마 안심인데, 그걸 쫓아간 아들은 걱정된다. 잡으러 올라가자마자 귓가에 또 엥- 벌인가 모기인가 분간이 되지 않아 혼비백산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내려왔다. 잠시 후 내려온 아이를 살피니 역시나, 팔다리에 이미 모기의 흔적이 가득하다. 나 역시 호들갑 떠는 사이 몇 방 더 물렸다. 산모기는 강력하다. 


언덕의 잔디는 심은지 오래되어 이젠 거의 탈모 수준이다. 빼곡했던 잔디는 다 어디로 가고 흙이 잔뜩 드러난 잡초밭이 되었다. 그래도 동네 먼 친척 분이 긴 여름 동안 조금은 풀을 다듬어 주신 흔적이 있다. 그분 아니었으면 우리 땅은 조선시대 장발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터..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뒤로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오 마이갓. 예전 하우스가 있던 자리는 아무도 오지 않은 듯했다. 내 무릎까지 풀들이 잔뜩 자라 있었다. 야생의 정글숲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예전엔 고추도 키우고 가지도 키우고 하던 곳인데, 여기가 거기라고? 믿기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이 도착하셨고, 집으로 들어갔다. 두 달 만에 자물쇠를 열고 육중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는 엄마. 먼저 도착해 마치 이방인처럼 문틈으로 집안을 엿보던 딸은 뭔가 비밀스러운 곳에 들어가는 듯 조심조심 한 발짝 뒤에서 따라 들어갔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이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며 한발 한발 디디는데 역시나. 천장이 뚫린 안마당을 통해 제비가족이 들어와 집을 짓곤 했는데, 바닥에 새끼가 떨어져 죽어있다. 다른 제비가족은 없는 걸로 봐서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았다. 너무 작아서 징그럽지 조차 않았다. 작고 소복이 깃털이 쌓여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슬픈 마음과 동시에 왜 내 미간은 찌푸려지는지. 치우는 건 아빠 몫인데도 종종걸음을 치며 그 자리를 피했다. 죽은 제비한테 괜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마당을 지나 대청마루의 여닫이 문을 열어보니 서까래에서 하얗게 가루가 떨어져 내린 곳들이 보인다. 사람 손을 안 타면 이렇게 된다고 했다. 참 이상하고, 참 신기했다. 사람이 없는 걸, 집이 어떻게 알지? 그럼 누가 계속 머물렀다면 저 가루들은 떨어져 내리지 않았을까? 


엄마는 부엌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풀어놓고, 아빠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두리번거리던 나는 엄마를 돕는 걸 택했다. 뒤란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쥐라도 죽어있을까 봐 잔뜩 쫄아 있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단지 정말 무성하게 자란 '잡초 나무'를 목격했을 뿐이었다. 


이게 정말 잡초 맞아? 그냥 꽃나무 아니야?

아니야, 그런 게 잡초야. 빨리 뽑아.

아니.. 꽃이 이렇게 예쁜데? 

무슨 소리야, 그거 다 잡초니까 얼른 뽑아.


시골집 뒤란은 할머니가 계실 때 관리하기 편하도록 자갈을 깔아 두었었다. 그래서 내가 가끔 갈 때는 늘 깔끔한 자갈밭 상태였는데, 두어 달 방치했을 뿐인데 이렇게 된다고? 믿기지 않았다. 누가 일부러 무슨 꽃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간 것 같았다. 예초기를 든 남편이 바깥 업무를 마치고 뒤란으로 입장했고 밀짚모자에 꽃분홍색 면장갑을 낀 엄마는 허리를 굽혀 잡초의 머리채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이토록 푸르른 잡초밭이라니! 엄마가 뽑은 잡초 뿌리가 산삼같다.


T가 되고 싶지만 너무 진한 F의 피를 가진 나는 그 장면이 마치 잡초 살육 대회를 보는 것 같았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처갓집에 와서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시키지도 않는 풀깎이를 하는 남편에게도, 할머니 사시던 집을 그래도 잘 가꾸고 계속 들르며 지내려는 엄마에게도 못할 짓이니까. 

곤충을 좋아하는 둘째에게도 이 광경은 썩 좋지 못했다. 방금 전 자기의 배까지 자란 잡초풀의 줄기에서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봤다며 좋아했는데, 풀에서 풀로 뛰어가는 방아깨비와 사마귀를 잔뜩 잡으며 빈 물통에 집어넣고 있었는데. 이런 천혜의 곤충잡이 환경을 싹 밀어버린다니. 믿을 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적응과 설득의 동물. 이해시키고 수긍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자 다시 잡초 살육 대회는 재개되었다. 풀을 깎을 때 나는 비릿한 냄새. 아파트 잔디 깎는 날에도 자주 맡아본 풀 내음. 나는 이게 왜 자꾸 동물의 피비린내가 연상되는 걸까. 풀들도 그냥 자라고 싶은데, 인간의 기준에 맞추어 예뻐 보이기 위해 잘려야만 하는 거니까. 우리가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자르고 싶어서 자르지만 얘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아프다고, 그만 자르라고 소리 지르며 흘리는 피비린내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누군가는 그 풀내음을 좋아하겠지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가끔씩 하곤 하는 어느 F의 단상이라고 여겨주면 좋겠다. 잡초 역시 그들이 왜 잡초인지 그 기준이 궁금했던 나란 사람. 인간이 먹을 수 있고, 관상하기 좋고, 예쁘고 깔끔하게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잡초라니. 농작물이 자라는데 방해가 되니까 잡초라니. 이 뒤란엔 농작물 따위는 있지도 않은데, 자갈밭을 비집고 자라났으니 뿌리째 뽑혀야만 하는 운명인 잡초라니!


잡초 雜草 [잡초]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 데 해가 되기도 한다.


이러면서도 나 자신은 또 벌레를 무서워하며 깔끔한 곳에서 지내길 원하는 현대인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분명 무척이나 모순적인 삶의 태도다. 마치 호텔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꺅, 무서워요! 저거 좀 치워주세요!"라고 해놓고 막상 그 벌레를 휴지로 잡아 짓눌러 죽이려 하면 "꺅, 그러지 마세요. 불쌍해요. 그런데 제 방에 있는 건 싫어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결이랄까. 싫지만 죽이는 건 싫고 불쌍하지만 내 방에 있는 건 싫으니. 그럼 생포해서 바깥으로 던지라는 건데. 그렇게 되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말인지.

참 나약하면서도 책임감 없는 태도가 아닐 수가 없는데, 그게 바로 지금 내 모습 같다는 생각에 잠시 서글퍼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씩씩한 두 전사에 의해 이미 반 이상 잘려나간 잡초들을 보며, 나도 재빨리 남는 장갑을 주워 끼고 눈치껏 쪼그려 앉아 잡초 살육 작전에 동참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딸랑이풀, 강아지풀, 이름 모를 풀 풀 풀. 생각은 하지만 아무 생각 안 하며- 땀으로 젖어가는 옷과 찐득한 습기와 바지를 뚫고 물어대는 모기와 싸우며 마구 뜯었다. 그냥 뜯었다. 집에 환해졌다고, 엄마가 웃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비릿한 풀내음을 온몸에 잔뜩 서린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에 찍은 사진. 사람의 손이 타고 안 타고 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
역시 5월의 모습. 정신없어 보이지만 나름 질서가 있다. 자갈틈의 잡초도 귀여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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